김국현 – SK hynix Newsroom 'SK하이닉스 뉴스룸'은 SK하이닉스의 다양한 소식과 반도체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전달합니다 Wed, 18 Dec 2024 02:38:52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7.1 https://skhynix-prd-data.s3.ap-northeast-2.amazonaws.com/wp-content/uploads/2024/12/ico_favi-150x150.png 김국현 – SK hynix Newsroom 32 32 반도체가 만든 가능성, 손 위에서 펼쳐지는 PC게임_‘스팀 덱(Steam Deck)’에 쏠린 기대 /expectations-focused-on-steam-deck/ /expectations-focused-on-steam-deck/#respond Wed, 08 Sep 2021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expectations-focused-on-steam-deck/ 소컷-1.jpg

PC게임을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1) 같은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휴대용 게임기의 폼팩터(Form Factor, 제품의 외형이나 크기, 물리적 배열)에는 여러 매력이 있다. PC 앞에 바르게 앉아 플레이하는 대신 드러누워서 뒹굴뒹굴 조작할 수 있고, 가족이 점령한 TV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아무도 TV 리모컨을 들고 있지 않는다면 본체를 독(Dock)2)에 연결한 후, TV 화면으로 송출해 게임을 즐기는 선택지도 있다. 이처럼 각자 가족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PC게임은 늘 최신 사양을 고려해 난이도 높은 소프트웨어로 제작된다. 당연히 휴대용 게임기에서 PC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크기와 용량이 제한된 소형 폼팩터에 PC 수준의 하드웨어 성능을 갖춰야 하고, 낮은 전력 소모량, 훌륭한 인터넷 환경과 같은 추가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는 반도체 및 통신 기술이 크게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미션이다.

하지만 최근 휴대용 게임기로 PC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새로운 기기의 등장이 예고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 ‘스팀(Steam)’3)을 서비스하고 있는 밸브 코퍼레이션(Valve Corporation, 이하 밸브)이 올 12월 중 휴대용 PC 게임 콘솔(Console) ‘스팀 덱(Steam Deck)’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에 게임 애호가들은 고대해온 새로운 게임 환경이 구현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공식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1)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 닌텐도가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를 통합해 2017년에 출시한 신개념 게임기.
2) 독(Dock): 탭/패드를 연결해 충전이나 스피커, PC와의 데이터전송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연결장치.
3) 스팀(Steam): 본래 게임 자동 업데이트 클라이언트로 시작해 PC게임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 잡음.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게임 유통 시스템으로 이용자는 스팀 클라이언트에서 게임을 구입하고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언제든지 플레이 할 수 있음.

[스팀의 성공과 밸브의 플랫폼 확장 시도, ‘프로톤’을 만나 꽃 피우다

PC는 자유로운 플랫폼이다. PC 앞에서는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수 있고, 여가시간에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게임 콘솔처럼 역할이 고정돼 있지 않다. 이 자유도는 게임 애호가들에게 오랜 기간 PC가 선호되던 주된 이유였다. 게임 기기를 살 때 가족의 동의를 얻어낼 명분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자유가 복잡할 수 있다. 정해진 스펙(Spec.)이 존재하는 콘솔이나 스마트폰과 달리, PC는 구매 시 무한대에 가까운 부품의 조합, 다양한 운영체제의 버전 등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한 만큼 신경 쓸 일이 많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구매와 설치가 번거로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PC게임 애호가들의 번거로움을 일거(一擧)에 해소해준 게임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4) 이 바로 밸브의 스팀(Steam)이다.

스팀은 출시 직후부터 성공을 거뒀다. 출시 타이밍도 좋았으며, 커뮤니케이션 기능 같은 유저 중심의 운영으로 지금까지 PC 게임 플랫폼 중에서 높음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밸브는 스팀이 윈도우 운영체제에 갇힌 앱 스토어 수준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맥(Mac)과 리눅스(Linux) 운영체제에서 구동할 수 있는 버전도 개발하고, 모바일로도 진출했다. 비록 리눅스에 기반을 두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운영체제인 ‘스팀OS(SteamOS)’를 만들었고, 이를 가동할 PC 기반 콘솔과 조이스틱 컨트롤러도 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저조했다. 즐길 만한 리눅스 게임의 수가 윈도우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적었다. 스팀에서 유통되는 게임 중 정식으로 리눅스를 지원하는 버전은 15%에 불과하다. 2015년 당시 버전의 스팀OS에서는 렌더링(Rendering,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도 윈도우보다 20~50% 더 느렸다. 스팀OS는 DirectX5) 대신 OpenGL(Open Graphics Library)6)을 썼는데, 최적화 수준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 밸브의 기대와는 달리 스팀 사용자 중 리눅스 점유율은 오랜 기간 1%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밸브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희망을 찾아냈다. 윈도우 게임을 리눅스에서 구동하기 위해 개발된 호환성 기술 ‘프로톤(Proton)’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 프로톤은 리눅스나 맥에서 윈도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오픈소스 기술인 와인(WINE)7)을 사용해, 윈도우 게임을 리눅스 기반 스팀OS에서도 구동할 수 있게 해줬다. 여기에는 DXVK(Direct3D-Vulkan)8)라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9) 변환 기술이 한몫했다.

밸브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게임 애호가들에게는 게임만 잘 구동된다면 운영체제가 윈도우든 리눅스든 아무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복음(福音)’을 전 세계 게임 애호가들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기로 했다.

4)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 후 바로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포장이나 내용물이 없기 때문에 패키지 방식 제품에 비해 저렴함.
5) DirectX: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게임 프로그래밍 작업을 위한 윈도우용 종합 멀티미디어 라이브러리.
6) OpenGL(Open Graphics Library): 크로노스 그룹이 개발 및 관리하고 있는 2차원 및 3차원 컴퓨터 그래픽 인터페이스.
7) WINE(Wine is Not an emulator): 오픈소스 윈도우 API/ABI 호환레이어로 윈도우가 아닌 운영체제에서도 윈도우 기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게 함. 따라서 윈도우를 가상머신과 같이 에뮬레이션하지 않고, 윈도우 API를 번역해 유닉스 기반 함수를 호출하는 방식을 사용해 큰 퍼포먼스 저하 없이 구동함.
8) DXVK(Direct3D-Vulkan): 개방형 3D 그래픽 API. OpenGL, Direct3D, 메탈(Metal)등과 경합 중. 근래 비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선호되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처럼 독자적 API를 지닌 곳은 적극적이지 않음.
9)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콘솔계의 쌍두마차’ Xbox과 PS에 도전장을 내민 ‘스팀 덱’

지금은 닌텐도 스위치가 약 8,900만 대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는 시대다. 동시에 플레이스테이션5(PlayStation5, 이하 PS5)와 Xbox 시리즈의 X나 S와 같은 신형 콘솔이 AMD(Advanced Micro Devices)의 RDNA2과 같은 신형 그래픽 아키텍처(Graphic Architecture)를 탑재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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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의 도전은 닌텐도 스위치처럼 생겼지만 PS 또는 Xbox와 동세대의 기술인 RDNA2를 탑재한 하드웨어를 제작하고, 보유한 자산인 스팀을 100%에 가깝게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휴대용 PC 게임 콘솔 ‘스팀 덱’이다. 겉모습은 닌텐도 스위치와 흡사하지만 아키텍처 기준으로는 PS5나 Xbox X에 가까운 신기종으로, 4코어(Core) 8스레드(Thread)10)의 AMD 반 고흐(Van Gogh)11) APU(2.4~3.5GHz)12)를 채택했다. ‘반 고흐’는 지금보다 한 세대 이전(7nm 공정) Zen 2세대의 CPU에 RDNA2의 그래픽 컴퓨트 유닛(CU, Compute Unit)13) 8개를 탑재한 저전력 모델이다.

10) 스레드(Thread): 동시 병렬 처리를 위해 처리를 분할하는 단위. 하나의 프로세스 내에서 여러 스레드가 각각의 실행 맥락을 만듦.
11) 반 고흐(Van Gogh): AMD는 제품 코드명에 화가 이름을 붙이고 있음.
12) APU(Accelerated Processing Unit): AMD가 정의한 개념으로 CPU/GPU 통합칩을 의미함.
13) 컴퓨트 유닛(CU, Compute Unit): 연산 가능한 코어인 스트림 프로세서 일부를 크게 묶어 하나의 큰 코어처럼 구성한 형태. CPU의 코어와 개념상 다른 GPU의 경우 엔비디아는 쿠다 코어(CUDA Core), AMD는 컴퓨트 유닛(Compute Unit)라고 명명함.

얼마 전 이 칩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는 모두 반신반의했다. CPU는 AMD의 주력 칩보다 이전 세대지만, 그래픽은 최신 세대로 엇박자처럼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Zen2와 RDNA2의 조합은 이미 PS나 Xbox의 맞춤 SoC14) 칩에서 검증된 조합으로,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을 개선한 것이 아닌 PS나 Xbox와 같은 콘솔 기기를 소형화한 것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선택이다.

AMD가 최신 가정용 게임 콘솔 기기 시장을 싹쓸이할 수 있었던 건 x8615) 기반에서 SoC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CPU나 GPU 등 모듈 모두를 칩 하나에 넣는 SoC 칩을 사용하면 전력 소모는 더 적고 열도 덜 발생한다.

14) SoC(System on Chip): 정보통신기기에 쓰이는 핵심 부품들을 하나의 반도체에 집약해 기존에 여러 개의 칩이 수행하던 연산 기능, 데이터의 저장 및 기억,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 변화 등을 하나의 칩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함.
15) x86: 인텔이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계열. 이들과 호환되는 프로세서들에서 사용한 명령어 집합 구조를 통칭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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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팀 덱의 칩은 이들 콘솔에 비해 CPU 코어수는 절반에 불과하고 RDNA2도 8CUs로 PS5(36CUs)나 Xbox 시리즈 X(52CUs), S(20CUs)에 비하면 부족하다. 또, 테라플롭스(TFLOPS)16)를 기준으로 삼으면 스팀 덱의 1.6TFLOPS는 XBox One S(1.4)보다는 높지만 PS4(1.8)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최신 콘솔인 PS5가 10.28TFLOPS, Xbox 시리즈 X가 12TFLOPS라는 점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하지만 그만큼 전력 소모량과 열 발생량은 더 줄어든다. 스팀 덱은 어디까지나 휴대용 기기다. 이 칩의 전력 소모량은 4~15TDP17)로 콘솔보다 낮은 수준이다.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니며 플레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16) 테라플롭스(TFLOPS): 플롭스(FLOPS, Floating-point Operations Per Second)는 컴퓨터의 성능을 수치로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단위로 초당 부동 소수점 연산을 의미하며, 테라(tera)는 10의 12승으로 1테라플롭스는 1초에 1조번의 연산을 하는 것을 뜻함.
17) TDP(Thermal Design Power): 전자 기기가 사용 시 얼마나 열을 발생시키고 얼마나 전력을 쓰는지 평가하는 단위.

[휴대용 게임 PC ‘스팀 덱’, 반도체 기술력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다

스팀 덱의 메모리는 16GB LPDDR5를 탑재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메모리로서는 최신형이고, 쿼드 채널(Quad Channel)18)를 채택해 메모리 대역폭에도 신경을 썼다. 통합칩의 경우는 특히 메모리 대역폭이 중요한데, CPU/GPU가 같은 메모리풀을 공유해 입출력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18) 쿼드 채널(Quad Channel): 4개의 메모리를 한 그룹으로 묶어 4배의 대역폭을 갖게 함으로써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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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덱은 단지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라 사실상 PC다. 이에 닌텐도 스위치처럼 대화면과 마우스, 키보드를 연결해 본격적으로 PC로 쓰는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밸브의 FAQ에 따르면 스팀 덱을 “기본적으로 PC”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원하는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윈도우 11를 설치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밸브도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특정 사용자가 스팀 덱에 윈도우를 설치해서 쓰지만 스팀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밸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적극적인 권장은 아닐 것이다. 향후 디바이스 드라이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드웨어는 합격점이라도 그 성패는 소프트웨어의 완성도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톤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스팀의 탑 10 게임 중 절반이 작동되지 않는다. 유명 게임일수록 윈도우에 특화된 기술을 써서 치트(Cheat) 대책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밸브는 스팀 덱 공식 발매일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스팀 덱은 매력적이지만 성공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GPD Win’, ‘Aya Neo’ 등의 PC를 소형 폼팩터화하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낸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스팀을 보유한 밸브라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실제로 그간 1% 미만이던 스팀 내 리눅스 이용자 수가 스팀 덱 공개 이후 1%를 넘었다. 브랜드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밸브가 ‘반도체’의 기술력과 ‘브랜드’의 힘을 바탕으로 휴대용 PC 게임 콘솔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12월 발매 예정이지만(한국 정식 발매 소식은 아직 없다), 이미 주문은 내년까지 밀려 있다. 스팀 덱이 이 기세를 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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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의 부활을 이끈 ‘반도체’ /virtua-fighter-5/ /virtua-fighter-5/#respond Thu, 17 Jun 2021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virtua-fighter-5/ ‘버추어 파이터’가 돌아왔다.

‘버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약 ‘버추어 파이터’가 떠오른다면 확실한 중년이다. 이처럼 세대마다 한 번쯤 청춘을 바쳤던 게임은 있는 법이다. ‘버파’를 들어 봤지만 즐긴 적은 없는 세대에게도 이 게임의 역사적 의미는 되짚어볼 만하다.

‘버추어 파이터’는 절권도, 팔극권, 유도, 취권, 스모 등 각종 무술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경치 좋은 링 위에서 결투를 벌이는 3D 격투게임이다. 일명 ‘3D격겜’의 진짜 원조. 이 게임은 버튼 3개의 심플한 조이스틱만으로 다양한 무술 기술을 구현해 냈다. 특히 그 기술들은 허무맹랑했던 종래 2D 격투 게임 속 기술과 달랐다. 게임 속의 3D 공간임에도 현실적인 물리 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결투 도중 시점이 바뀌는 등의 3D 그래픽도 실감이 났다. 지금 보면 조악한 삼각형 폴리곤(Polygon)1) 뭉치들의 대결이지만, 그 당시에는 캐릭터의 팔이 잡히면 진짜 팔이 꺾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버추어 파이터 1’이 등장하던 1993년 말 당시 소년, 소녀들은 오락실 구석에서 게임 속 화면을 보며 미래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1) 폴리곤 : 주로 3D 컴퓨터 그래픽에서 면의 조합으로 물체를 표현할 때의 각 요소.

당대 최고의 반도체로 선보인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전성기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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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 인게임 캡처화면

3D 레이싱 게임 ‘버추어 레이싱’에서 ‘버추어 파이터’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초반 전자오락실은 게임회사 세가(SEGA)의 주무대였다. 특히 당시의 반도체 기술력으로는 풀 폴리곤(Full Polygon)으로 완성된 3D ‘체감 게임’은 당시 전자오락실에서나 가능한 유희였다. 일반 PC나 콘솔 게임(Console Game)에서 그 수준의 퍼포먼스를 내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

세가는 불과 1년 만인 1994년에 바로 ‘버추어 파이터 2’를 출시했고, 밋밋한 폴리곤에는 그럴듯한 텍스처(Texture)2)가 입혀졌다. 이는 당시 ‘버추어 파이터’에 사용된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Arcade System Board)3)이 MODEL1에서 MODEL2로 이어지는 3D 특화 기판이었기 때문이다. 세가는 MODEL 시리즈 기판을 위해 군수업체 GE의 항공우주(Aerospace) 사업부에서 나온 특수 칩을 활용했다. 냉전 시대 이후, 방위산업용 3D 기술을 민간에 이양(移讓)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반도체가 게임에 사용된 것.

2) 텍스처 : 질감 또는 색상이나 명암과는 독립적으로 객체의 표면에 대해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을 특성 짓는 속성들의 집합.

3) 아케이드 시스템 기판 : 아케이드 게임에 사용되는 전자 회로 기판, 혹은 그것에 각종 전자부품을 탑재한 상태의 입출력 장치를 사용한 아케이드 게임 시스템의 형식. 게임 용어로 간단히 기판이라 하는 경우, 대부분 아케이드 게임 기판을 가리킨다.

당시 반도체 기술과 인력은 GE에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을 거쳐 그 자회사인 Real3D로 이어진다. 그 이후 이를 둘러싼 합병과 분사와의 소송이라는 긴 우여곡절 끝에 인텔(Intel)과 엔비디아(NVIDIA)와, ATI(현 AMD)로 흩어졌다. 오늘날 3D 그래픽 반도체의 주축들은 ‘버추어 파이터’와도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가는 더 정교한 게임을 개발했다. 1996년에 출시한 ‘버추어 파이터 3’에서는 MODEL3로 기판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3D 공간에 미적 요소를 두드러지게 구현했다. 땅바닥에는 굴곡이 생겼고, 무술 동작도 더 미려(美麗)해졌다. 매년 기술의 발전이 눈에 보이던 시절이다.

이처럼 ‘버추어 파이터’의 ‘리즈 시절’에는 당대 최고의 반도체와 기술력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는 당연하게도 상업적 성공을 거머쥐었고, ‘1998 컴퓨터 월드 스미소니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게임업계에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한 버추어 파이터, ‘세가의 시대’ 종막을 알리다

국내에도 ‘버추어 파이터’ 팬들이 많았다. 동네 오락실마다 팀이 꾸려졌고, PC 통신을 통해 알음알음 교류하며 원정경기를 가기도 했다. ‘버파 동네짱’이 있었던 추억의 전자오락실에선 일종의 자생적 e스포츠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가는 이 같은 e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살리지 못했다. 이미 PC방과 ‘스타크래프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 등장하며 게임의 헤게모니가 오락실과 PC 통신에서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으로 이행되던 시기였으니, 도전했다고 해도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의 동네마다 나름 ‘버추어 파이터’ e스포츠가 벌어지고 있었고, 세가가 직접 ‘버추어 파이터’ 세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한국 학생들이 우승, 준우승을 쓸어가 버렸지만, 개최국인 일본에서는 흥행하지 못했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버추어 파이터’ e스포츠는 막을 내리게 된다.

개최국이 분발하지 못해 흥행실패로 이어졌던 탓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 시기는 이미 세가로서도 고난의 시기에 접어들던 때였다. 세가의 게임 콘솔 새턴(Saturn)이 소니(Sony)의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에게 밀려 몰락해 가고 있던 시기. ‘버추어 파이터’의 길지 않은 여생은 이미 이때부터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21세기가 돼서도 명맥은 이어졌지만, 사실 ‘버추어 파이터’는 흘러간 게임이 되고 있었다. 그 후 세가는 드림캐스트(1998년 세가에서 발매한 가정용 게임기)의 실패를 끝으로 하드웨어 사업에서 철수한다. ‘버추어 파이터’도 그렇게 지난 역사가 돼 버렸다. 마지막 시리즈 ‘버추어 파이터 5 파이널 쇼다운’은 2010년작으로 벌써 11년 전(콘솔 다운로드판은 9년 전)이다.

세가 60주년 프로젝트로 11년 만에 귀환한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

세가는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세가의 황금기는 지나갔지만, 요즘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게임 ‘용과 같이’ 시리즈가 대히트하고, 스마트폰 관련 사업에서도 이익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

세가는 여유가 생기자 뒤를 돌아보며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려 나섰다. 추억을 되짚어 보니 1990년대 초반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았던 세가의 전성기였다. 사람들을 추억에 빠지게 만드는 1993년의 ‘버추어 파이터’가 다시 소환된 것은 예견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버추어 파이터 5 파이널 쇼다운’ 이후 11년 만에 신작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세가는 신작 대신 ‘버추어 파이터 5 파이널 쇼다운’을 자사의 최신 게임 엔진4)인 ‘드래곤 엔진’으로 재구축한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을 내놨다.

4) 게임 엔진 : 고해상도 그래픽과 사운드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쉽게 할 수 있게 만든 개발 환경.

하지만 단지 리마스터나 리메이크라고 보기에는 손댄 부분이 재개발 수준으로 상당히 크다. 특히 과거의 기회를 놓쳤던 e스포츠에 특화된 기능들이 돋보인다. 최대 16인 참가 가능한 토너먼트와 리그가 추가되고, 실시간 관전 기능으로 게임 참가자를 응원할 수도 있다. 과거에 ‘뿌요뿌요’ e스포츠를 운영해 본 노하우를 살려 ‘버추어 파이터’를 세가 e스포츠 사업의 주전으로 삼으려는 욕심이 엿보인다.

특히 액션의 시각적 효과가 화려해지고, 관전 중에 스탬프를 던지며 응원할 수 있는 등의 요소는 e스포츠 중계와 관전이라는 현대적 문화에도 충분히 통할 만하다. 또한 코로나19 거리두기 대책에도 만전을 기해, 향후 e스포츠 대회는 개최, 관전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지도록 만들었다. 패자부활전과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Double Elimination Tournament, 두 번 지면 끝이지만 한 번 져도 나머지를 다 승리하면 우승할 수 있는 토너먼트 방식) 등도 포함시켜 다양한 운영의 묘(妙)도 살릴 수 있다.

화려한 캐릭터 의상 세트나 초대 버추어 파이터 풍의 투박한 폴리곤을 추억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전더리 팩 등은 유료 DLC(DownLoadable Contents)로 제공한다. 비록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최신작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이런 요소들을 통해 나름 축제 분위기는 내고 있다.

버추어 파이터를 되살린 ‘드래곤 엔진’, 그 뒤에는 향상된 반도체 기술이 있다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은 많은 부분에서 개선을 이뤄냈지만, 주요 요소는 11년 전 소스를 활용해야 해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그래픽이 아쉬웠다. 그래서 왕년의 팬들을 소환하기 위해 분위기와 조작감은 될 수 있는 한 유지한 반면, 그래픽은 처음부터 아예 다시 그렸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세가의 60주년 프로젝트’라는 명목을 갖고 있지만, 과거의 명작인 ‘버추어 파이터’가 아직까지 수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작업도 가성비 위주로 이뤄졌다.

대신 역전의 용사들이 힘을 뭉쳤다. ‘버추어 파이터’의 산실인 AM2(Amusement Machine) 스튜디오, 즉 ‘오락 기계 2국’과 ‘용과 함께 스튜디오’가 함께 개발에 참여한 것. AM2 스튜디오는 ‘버추어 파이터’를 비롯해, 한 시대의 장르를 개척한 레이싱 게임 ‘아웃런’, 3D 슈팅 아케이드 게임 ‘스페이스 해리어’ 등의 명작을 만들어 내며 세가에서 가장 유명해진 스튜디오다. 용과 함께 스튜디오 역시 현시점의 세가의 주력 게임을 개발한 스튜디오다. 그야말로 신구 대표주자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현대 세가의 대표작인 ‘용과 함께’는 거대 환락가를 배경으로 어둠의 사회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성인용 게임의 수작. 그러나 이 ‘용과 함께’ 시리즈도 발매한 지 어느덧 15년째이니 신게임은 아니다. 2016년 ‘용과 함께 6’부터 자체적으로 만든 드래곤 엔진을 사용 중인데, 이번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에 이 엔진을 도입했다.

그런데 사실 드래곤 엔진은 철저하게 ‘용과 함께’, 즉 밤거리에 특화된 게임 엔진이어서 다른 게임에서 사용하기 힘들다고 여겨졌던 게임 엔진이었다. 리메이크판인 ‘용과 같이: 극(極) 2’, 그리고 세가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저지 아이즈: 사신의 유언’ 등은 드래곤 엔진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세가 게임들로 모두 네온이 빛나는 어둠의 거리가 주무대다. 환락가의 네온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광원을 지나가는 엑스트라와 오브제마다 아낌없이 빛을 뿌려야 하는 계산 물량의 승부였다. 낡았지만 밤을 비추는 수많은 간판, 사람의 손때가 묻은 거리의 사물들. 여느 게임처럼 밝고 광활한 평원이나 어두침침한 던전(Dungeon)을 표현하는 일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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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래픽이 향상돼 리얼리티는 넘치지만 정작 움직임에 대한 걱정은 있었다. 드래곤 엔진으로 만들어진 ‘용과 함께’에서 인게임 격투에 대한 피드백은 부정적이었고, 모든 ‘버추어 파이터’의 신작마다 전작보다 부자연스럽다는 평이 뒤따랐기 때문. 하지만 익숙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쾌한 타격감을 선사하던 ‘버추어 파이터’다. ‘버추어 파이터’ 팬이라면 예전에 그랬듯 지금도 큰 위화감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거다.

결론적으로 ‘버추어 파이터 5 : 얼티밋 쇼다운’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던, 과거의 그 격투 게임을 성공적으로 되살린 게임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익숙한 얼굴들을 통해, 오래전 그 게임을 즐기던 시절을 다시 소환하는 힘이 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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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중국 게임 ‘원신’, 그 성공 이면에는 ‘반도체’가 있다 /chinese-game-wonshin/ /chinese-game-wonshin/#respond Tue, 09 Mar 2021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chinese-game-wonshin/ 최근 중국의 대두(擡頭)를 나타내는 상징적 분야로 게임 분야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100대 게임(수익 기준) 중 21개가 현재 중국산 게임,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제 양보다는 높아진 질이다.

중국 게임은 ‘짝퉁’이라는 세계적 편견마저 털어내고 있었다. 그 주역은 바로 ‘원신’으로, 출시 전부터 명작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젤다)’1)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게임이다. ‘표절’ 논란은 3년간 400명의 개발 인력과 1,000억 원 이상의 개발 비용을 투입해 개발된 AAA 게임2)의 사전 입소문으로는 치명적이었지만, 정작 개발사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1)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일본 게임사 닌텐도가 개발/배급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젤다의 전설’ 시리즈 중 하나로, 원신처럼 오픈 월드와 3D 카툰 렌더링 그래픽을 채택하고 있음.

2) AAA 게임(Triple-A Game):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해 주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해, 기본적으로 수백만 라이선스 판매량을 기대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원신은 중국의 게임 회사 미호요(miHoYo)의 온라인 게임이다. 미호요는 일본 문화를 탐닉하던 세 명의 중국 학생에 의해 2012년 창립된 게임 개발사다. 회사 이름부터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이 회사는 중국 회사임에도 게임 이름인 원신(原神)의 발음을 일본식인 겐신(genshin)으로 표기하고, 회사 로고 밑에는 ‘기술 오타쿠가 세상을 구한다(Tech Otakus Save The World)’라는 독특한 사훈을 자랑스럽게 적어뒀다. 마치 좋았던 시절 일본의 문화를 계승한 적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원신을 둘러싼 부정적 풍문 속에서도 원신 제작 과정에서 가장 주된 영감을 줬던 작품으로 젤다를 꼽았고, 젤다의 게임 요소를 원신에 “긍지를 갖고 장착했다”고 공식적으로 칭송했다. 남들에게 비슷해 보이는 점은 그들 입장에서는 존경하는 게임에 대한 ‘오마주’였던 것.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듯, 문화는 함께 참고하고 베끼며 어울릴 수 있다는 배포는 다분히 중국적이다.

전세계 게임 유저를 매료시킨 원신의 ‘기술력’

표절 논란에도 출시 후 원신에 대한 전세계 게임 팬들의 리뷰는 호의적이었다. 첫인상은 비슷해 보였지만, 원신은 젤다와는 전혀 다른 게임이었기 때문. “몰라봐서 미안하다” 수준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구글과 애플로부터 각각 2020년의 베스트 게임, 2020년의 아이폰 게임으로 선정되는 쉽지 않은 영예도 얻었다. 출시 첫 주에 안드로이드와 iOS에서 2,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6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2주 만에 개발비를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출시 첫날 기록만 따지면 중국산 앱으로서는 틱톡(TikTok)보다 성공적인 첫발을 뗐고, 트위치(Twitch)3) 시청자 수는 글로벌 인기 게임인 포트나이트(Fortnite)보다도 많았다. 모바일, PC, 콘솔 플랫폼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에 더해 젤다의 개발사 닌텐도가 서비스하는 콘솔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에서도 출시되며, 애니메이션의 종주국 일본 시장에서도 그 세계관과 게임 시스템의 신선함을 인정받았다. 결론적으로 원신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꼬리표를 떼어내고 게임성으로 유저들의 색안경을 벗겨낸 ‘수작(秀作)’이었다.

3) 트위치(Twitch): 게임 관련 스트리머가 주로 활동하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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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공식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콘솔(PS4), 모바일, PC에서 게임을 실행할 수 있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또한, 원신은 ‘유니티’ 게임엔진(Game Engine)4)으로 만들어진 가장 성공적인 게임이 됐다. 원신은 출시 초기부터 가장 핵심적인 홍보 포인트로 ‘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5)으로 구현한 광활한 ‘오픈 월드(Open World)’6)를 내세웠다. 자체 개발 기술력을 전면에 배치한 것.

유니티는 거의 모든 게임 플랫폼을 다룰 수 있는 크로스 플랫폼 개발환경이지만, 다중 플랫폼에서 동시에 게임을 개발하는 일은 배포가 있어야 한다. 플랫폼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일은 의외로 각 플랫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이를 위해서는 어셋(Asset)7) 하나하나 크로스 플랫폼을 의식해서 제작하는 일을 규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PS와 같은 최신 콘솔 기기의 하드웨어와 모바일 기기의 하드웨어는 체급 자체가 달라 각 하드웨어의 특성을 살리는 최적화도 플랫폼마다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PC 버전의 경우 부품의 조합에 따라 최적화를 위한 경우의 수가 폭증한다. 이에 뒤따르는 테스트와 검수의 부하도 상당하다. 하드웨어의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뒷받침할 역량이 없으면 지치기 마련이다.

4) Game Engine: 게임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돕는 각종 툴과 소스 코드를 담은 소프트웨어.

5) Cross Platform: 모바일, PC,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하나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방식.

6) Open World: 이동이 자유로워 구현된 게임 맵상 모든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게임 환경.

7) Asset: 3D 모델이나 풍경화, 사운드 효과나 음악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원신의 진짜 매력은 반도체가 화면 위에 그려내는 ‘실시간 애니메이션’

원신의 매력은 만화를 찢고 나와 뛰어노는 듯한 작화(作畫)의 생생함, 즉 ‘카툰 렌더링(Cartoon Rendering)’8)에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셀 애니메이션(Cells Animation)9)을 구현하기 위해 한 장 한 장을 물감으로 칠하던 시대는 진작에 지나갔다. 요즘 어지간해서는 만화영화도 컴퓨터로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6만 5,000프레임 하나하나를 115명의 화가가 캔버스 유화로 그려 완성한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st)’가 대표적인 사례.

8) Cartoon Rendering: 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서 만화(Cartoon)로 3D 그래픽을 구현(Rendering)하는 것.

9) Cells Animation: 배경은 그대로 두고 캐릭터만 움직이게 하는 애니메이션 기법.

하지만 셀 애니메이션이란 원래 셀룰로이드 필름 위에 한 장 한 장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던 노동 집약의 산물이다. 그 정성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2D 애니메이션에는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에 의해 대중화된 미국식 디지털 3D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일종의 향수가 있다. 2D 애니메이션은 외곽선이 명확하고, 그 안쪽은 붓으로 색칠한 티가 난다. 컴퓨터로 칠해도 일부러 아날로그 느낌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3D 표면을 텍스처(Texture)10)의 인공적 질감 대신 만화 느낌을 입히는 것만으로는 2D의 정감을 살릴 수 없다. 2D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3D 게임에서 재연하는 일은 단순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림을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지난한 시행 착오가 필요하다. 2D에서는 예뻐 보였던 갸름한 턱도 3D로 어설프게 옮기면 뾰족한 뿔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옮겨오려면 나름의 기교가 필요하다. 일본식 2D 애니메이션과 미국식 3D 애니메이션의 그림이 애초에 그렇게 다른 데는 문화적 이유 이외에 작화 기교의 차이도 있다. 게다가 게임은 3D 공간에 2D 느낌의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살려내야 한다.

10) Texture: 질감 또는 색상이나 명암과는 독립적으로 객체의 표면에 대해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을 특성 짓는 속성들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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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은 이 셀 애니메이션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솜씨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티 앨리어싱(Anti-Aliasing, 이하 AA)11)’이다. 픽셀이 두드러지는 계단 현상이 발생하면 지금까지 만화라고 생각했던 착각이 벗겨지며 흥이 깨져 버리기 쉬운데, 이를 해결해주는 기교가 바로 AA다. 원신에도 SMAA(Subpixel Morphological Anti-Aliasing)12), TAA(Temporal Anti-Aliasing)13)등 여러 AA 기법이 시도되는데, 이들 기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 Graphic DRAM 등과 같은 반도체의 힘이 총동원돼야 한다.

11) Anti- Aliasing: 해상도 문제로 화면의 윤곽이 깨지는 계단 현상을 최소화하는 그래픽 기법.

12) Subpixel Morphological Anti-Aliasing, 윤곽선을 따로 검출해 선이 번지는 일을 줄이는 방식의 AA 기법.

13) Temporal Anti-Aliasing: 움직이는 동안 앞 프레임과의 차이를 계산해서 부드럽게 하는 AA 기법. 움직임에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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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원신의 성공에는 중국의 기술력을 뽐낸 것 이외에 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중국 기업도 이제 오리지날 IP(지식재산권)로 게임 대국을 꿈꿀 수 있음을 증명한 것. 미호요가 원신에 앞서 선보인 붕괴 시리즈의 흥행은 중국이 앞으로 이러한 대작 게임을 내놓을 만한 체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원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호요는 원신의 7개 지역 중 먼저 공개된 두 지역에 각각 서양과 중국의 문화적인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을 잡으면서도 애국적 요소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재패니메이션에서 오타쿠로 이어지는 일본 문화의 계승과 중흥이라는 면에서의 성과는 더 컸다. 그래서인지 게임 매출 비중도 중국, 일본, 미국이 각각 30%, 25%, 20%의 순으로, 각 지역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원신의 이런 성공에는 스토리나 세계관에서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 이외에도, 사용자들이 원하는 완벽한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반도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이런 대작 게임들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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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ESG 혁신 중,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아본 ESG 경영 /esg-management/ /esg-management/#respond Mon, 08 Feb 2021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esg-management/ 기업의 전통적 경영방식은 재무적 성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요구되는 기대 수준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중요시되며 전략적 사고로서의 ESG1)가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다. 사회적 책임과 이익 추구를 모두 놓치지 않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유토피아적인 이념이 아니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사회적 요청은 더 멀리 볼 줄 아는 경영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지속가능발전법에 따르면 “현대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 사회 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시키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며 ESG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영 전략 이란, ESG를 의식하고 ‘ESG 경영’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소양이 아니라 기업이 멀리 볼 줄 아는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1) ESG: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앞글자를 딴 약자로,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의미.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ESG를 추구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개선한다는 실증론적 기준으로 2005년 처음 등장함.

ESG, 어떻게 기업 가치 평가하는 기준이 됐을까

지난 2015년 글로벌 기후변동협약 파리협정(Paris Agreement)2)과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3)가 정비됐다.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이 대통령이 취임하며, 파리기후협정 복귀와 2050년까지 탄소 중립(Carbon Neutral)4)을 선언함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범지구적인 움직임은 다시 한번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EU는 물론 한국과 일본 정부도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중국도 2060년까지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120여 개국에서 탄소 중립 목표는 대세가 되며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2018년부터는 ESG 활동을 하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ESG 투자’가 전체 운용자산의 20~40%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 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투자 규모는 40조 5,000억 달러(4경 4,400조 원)으로, 2018년 30조 6,800억 달러(3경 3,600조 원)와 비교하면 1년 반 만에 31% 증가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은 연례 서한을 통해 “기후변화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이며, 이러한 리스크 평가를 위해 일관성 있는 양질의 주요 공개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환경 지속성과 ESG 공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ESG를 염두에 두고 책임 있게 투자하겠다’는 기조가 확고한 만큼, 기업은 투자 확보와 주주 이익을 위해서 ESG를 경시할 수 없게 됐다.

2) 파리협정(Paris Agreement):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신기후체제의 근간이 될 파리협정이 채택됨. 협약에 따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95개 당사국 모두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범지구적인 장기목표 하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함.
3) UN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인류의 보편적 문제(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 등)와 지구 환경문제(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 등), 경제 사회문제(기술, 주거, 노사, 고용, 생산 소비, 사회구조, 법, 대내외 경제)를 2030년까지 17가지 주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해결하고자 이행하는 국제사회 최대 공동목표.
4)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늘려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Zero’로 만드는 것.

투자자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그린과 환경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공생의 가치를 중시하고 지구를 위한 좋은 제품을 골라 쓰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 더 좋은 근로환경(Work Environment)을 제공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과 일하려는 구성원과 파트너도 늘고 있다.

이처럼 비즈니스를 둘러싼 이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수 인재나 알찬 사업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보람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ESG가 고객, 구성원, 파트너 등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요청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기업들은 대부분 ESG에 적극적이다. 예전에는 설비투자 대신 ESG에 경영자원을 배분하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렸지만, 이제는 기업이 ESG에 신경 쓰는 장기적인 안목과 단기적인 사회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환경과 사회를 배려한 투명한 경영 전략은 기업가치 향상과 연계된다. 선한 브랜드 영향력은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채권5)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등 경영 자원을 더 쉽게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 위기관리 역량도 고도화해 위기 시 기업을 응원하는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블룸버그나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IBD(Investor’s Business Daily) 등 국제적으로 ESG 평가를 하는 이들도 이미 진용을 갖췄다. 마치 재무제표가 기업 건강을 나타내듯 ESG도 내일의 지속가능성을 짚어낼 수 있는 맥박이 되고 있다.

5) 지속가능채권(Sustainable bond): 그린 프로젝트나 사회 지원 프로젝트에 사용될 자금을 조달하는 특수목적 채권.

“디지털은 순환 경제 구현의 핵심”…EU를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ESG와 DT의 결합

ESG 경영은 리스크 회피를 위한 수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강조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최신 경영 트렌드인 IT기술 기반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T)이 접목되고 있다는 것.

작년에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기후 중립화 및 디지털화 가속을 통해 EU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신산업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6) 여기에는 자원 순환 촉진을 위한 이니셔티브(initiative)인 ‘3R(Reduce, Reuse, Recycle)’을 성장전략으로 승화시킨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이하 CE)’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CE는 채취, 생산, 소비, 폐기의 선형적(Linear) 경제구조를 벗어나 각 단계마다 관리와 재생을 통해 자원을 재활용하는 지속적 경제 구조.

EU는 CE가 더 깨끗하고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디자인부터 생산, 사용, 폐기과정에서 탄소 배출량과 폐기물을 줄이고 생산비용을 낮추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내구성, 재사용, 수리 가능 여부에 관한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2030년까지 EU 전역에서 7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U는 이러한 CE를 가능하게 하는 엔진이자 촉매로 DT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7)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의 중추에 디지털 전략을 놓아두었다. DT는 데이터의 힘으로 종래의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다. EU는 디지털과 순환이라는 두 가지 변화(Transformation)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해, 여기서 창출되는 시너지로 그린 딜을 완수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8)

6) 출저: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5/globalBbsDataView.do?setIdx=244&dataIdx=181463
7) 그린 딜(Green Deal):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뜻하는 말로, 기후변화, 에너지, 산업, 건물, 수송, 농업, 생물다양성, 환경 등 8가지 분야를 선정하고 2050년까지 유럽 대륙을 기후 중립(Climate Neutral) 지역으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EU의 친환경 정책(출처: https://ec.europa.eu/info/strategy/priorities-2019-2024/european-green-deal_en)
8)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GMqJ_aMWYec

CE에서는 원자재가 폐기되기 전까지 기획(Design), 생산(Production), 소비(Use/Consumption), 재생(Reuse, Repair, Re-manufacturing), 재활용(Recycle)의 단계로 순환되는데, 데이터 기반 디지털 솔루션(Solution)은 CE의 각 단계를 개선하고 그 자체가 새로운 순환을 하도록 만든다. △정보를 축적·교환하고 △파트너십을 촉진하며 △밸류체인(Value Chain)상에서의 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지식·연결·공유 비즈니스 모델’로 제품과 프로세스를 더 순환시킬 수 있게 한 것.

디지털로 고객 기반을 확장하고, 인재를 포함한 경영 자원을 자산화하며,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포함한 파트너십(Partnership)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 모두 각 단계의 순환에 필수적인 활동이다.

그 방법론으로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9)에서 공유경제(Sharing Economy)10)까지 서비스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며 디지털로 강해진 시민과 소비자를 그 주역으로 내세웠다. 또한,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한 순환식 공급망 구성 △제조 시 설비 공유 등 공동 이용 촉진을 통한 가동률 최대화 △기획단계부터 제품의 필요성을 검토해 제품 판매 대신 서비스로 출시하는 방식 등 발상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이뤄지고 있다.

9)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주기적으로 생필품이나 의류 등을 받아 사용하거나 여러 종류의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이 대표적임.
10) 공유경제(Sharing Economy):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해 경제활동 하는 것.

E, S, G 각각의 책임을 다하며 기회 창출에 분주한 기업들

1. 환경(Environmental) 분야

전 세계 첨단 기업들도 앞다퉈 ESG 경영을 수행 중이다. 특히 주요 IT 기업들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업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환경 분야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다른 사업들과 융합하여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이미 10억 달러의 ‘기후 혁신 펀드(Climate Innovation Fund)’를 조성해 향후 4년간 탄소 제거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라는 개념도 들고나왔다. ‘탄소 중립(Carbon Neutral)’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배출량 이상으로 흡수량을 늘리자는 것. 이와 관련해 2030년부터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배출량보다 더 늘린 후, 2050년까지 창사 이래 배출한 모든 이산화탄소를 회수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도 내걸었다. 2012년 실질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한 바 있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다.

이는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MS는 최근 미국의 한 농업협동조합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농업을 효율화하기 위한 협업을 시작했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토양에 흡수되도록 하고, 그 가치에 환금성을 부여해 농가 부수입으로 만드는 BECCs11)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11) BECCs(Bio Energy with Carbon Capture and Storage, 바이오에너지 탄소 포집·저장): 직접적인 공기 탄소 포집·저장(DACCS, Direct Air Capture with Carbon Storage) 기술과 더불어 온실가스를 직간접적으로 회수하는 대표 기술. 탄소 중립 사회 달성을 위한 중요한 열쇠로 평가받고 있음.

아마존(Amazon) 제프 베조스(Jeff Bezos) CEO는 주주 서한을 통해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기후협약을 최초로 서명한 회사로, 파리 기후 협약을 10년 앞당긴 204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 이행을 위해 2022년까지 배송용 차량 1만 대를 전기차로 바꾸고, 2030년까지는 총 10만 대를 업무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2024년까지 80%, 2030년까지는 100%로 각각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포장재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8년 ECO Vision 2022(ECO: Environmental & Clean Operation)를 선언하고 친환경 생산 체계를 갖추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데 이어, 적극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녹색 경영 모델을 선도적으로 구축해가고 있다.

특히 환경 활동 분야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2022년까지 2016년 온실가스배출전망(BAU, Business as Usual)12) 대비 4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 SK하이닉스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시스템 최적화를 통한 사용량 및 비용 절감 △기술 개발과 장비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 세 가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9년에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국내외 모든 생산 거점에서 ‘폐기물 매립 제로(ZWTL, Zero Waste to Landfill)13) 인증’을 완료했다. 지난해에는 SK 관계사들과 함께 국내 기업 최초로 RE10014)에 가입하고, 단계별 이행 로드맵에 따라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12) 온실가스 배출전망(BAU, Business As Usual):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온실가스 총량.
13) 폐기물 매립 제로(ZWTL, Zero Waste to Landfill): 미국 최초 안전규격 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이 폐기물 총 중량에서 재활용 불가능한 폐기물 중량을 빼고 재활용률을 수치화해 등급을 부여함. ZWTL Platinum(100%), Gold(95~99%), Silver(90~94%). SK하이닉스는 현재 이천 93%, 청주 94%, 우시 96%, 충칭 91% 달성.
14) RE100(Renewable Energy 100):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조달하겠다는 선언. 재생에너지란 풍력, 지열,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등을 지칭. 이를 통해 기업은 기존 석유나 석탄 등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배출하는 탄소를 절감함으로써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공장을 가동하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음.

2. 사회(Social) 분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업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일은 ESG 중에서도 사회 분야에 해당한다. 특히 코로나 19가 일으킨 시장과 사회 변화는 이 분야의 중요성을 더 높였다. 또한, 이해관계자들이 노동권, 젠더 이슈 등 공급망을 포함한 조직 내외에서 광범위하게 신경 쓰고 있는지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사회와 얼마나 적절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 코로나 19 팬데믹이 일상이 된 이후에는 주로 종업원의 감염 리스크를 포함한 구성원 건강에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종업원 입장에서 해고나 수익 감소를 어떻게 보살피는지 등 노동환경에 대한 기업 철학이 이 분야의 관심 사례가 되고 있다.

사업이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리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사회 분야에서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원자재가 분쟁지역 등 의심스러운 곳을 피해 책임 있게 조달되고 있음을 홍보 중인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사례. 실제로 엔비디아는 2020년 IBD ESG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ESG 경영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SK하이닉스도 사회 분야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고객, 주주, 협력사까지 이해관계자 범위를 넓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DBL(Double Bottom Line,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동시 추구) 경영철학을 근간으로, 폭넓은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고속 성장을 이끈 ‘동반성장’ 분야에서는 협력사와의 소통의 장인 ‘DBL 스퀘어를 중심으로 △분석/측정 지원 사업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 △ESG 컨설팅 △청년 Hy-Five 등 다양한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회사가 보유한 반도체 지식과 노하우를 협력사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독거 어르신을 위한 인공지능(AI) 스피커 ‘실버프렌드’ 무상 지원, △치매 어르신과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위치추적 기반 배회감지기 ‘행복GPS’ 보급 △코로나 19로 신음하는 지역사회 곳곳에서 지원 활동을 펼치는 ‘사회안전망(Safety Net) 구축’ 사업 등을 통해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고, 올해는 SK그룹과 함께하는 ‘온(溫)택트 프로젝트’를 통해 코로나 19로 인한 급식사업 중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행복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3. 지배구조(Governance) 분야

마지막 지배구조 분야는 IT업계의 강점이자 약점이 되기도 하는 영역이다. 고성장 분야인 만큼 창업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경향이 있지만, 대내외 경영 트렌드가 변화되면서 이사회의 다양성이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2018년 블랙록은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지난해 1월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도 올해 하반기부터 다양성을 충족하는 이사가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 업무를 맡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BLM(Back Live Matter,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으로, 다양성은 성별에서 인종 관점으로도 확산됐다.

이런 추세에 맞춰 유리천장을 뚫는 여성 고위 임원이 여럿 탄생했다. 시티그룹은 월가에서 최초로 여성인 제인 프레이저(Jane Fraser)가 시티은행장을 차기 CEO로 지명했고, MSNBC는 케이블 뉴스 업계에서 처음으로 흑인 여성인 러시다 존스(Rashida Jones)를 차기 회장에 선임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첫 여성 단장이 탄생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킴응(Kimberly J. Ng)은 메이저리그 수석부사장으로 여성이자 아시아계로서는 처음으로 마이애미 말린스(Miami Marlins) 단장에 올랐다.

미국 나스닥(NASDAQ)은 1명의 여성 이사와 1명의 성소수자(LGBTQ)15) 등 다양성을 상징하는 이사를 상장 기업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새 가이드라인을 승인할 경우 3,300여 개에 달하는 상장기업에 작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도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내년 8월부터 ‘여성이사쿼터제’를 운영하여 이사 중 1명 이상을 다른 성별로 선임하도록 할 예정이다. 최근 IT 기업 구직자 역시 회사의 이사회 구성을 관심 갖고 보는 분위기로, 이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기업은 인재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15) LGBTQ: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적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자(Queer)의 앞글자를 딴 약어.

SK하이닉스도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책임 경영을 수행하기 위해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이사회 총원의 3분의 2인 6명을 사외이사로 구성해 금융, 회계, 반도체 기술, 법률, 사회정책, 언론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고, 사외이사 중 여성 인력도 포진시켰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함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경영진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또한 효율적인 ESG 경영을 위해 이사회 산하에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과 결과를 검토하는 ‘지속경영위원회’를 두고, 회사의 준법경영활동을 감시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심의 권한을 부여했다. 올해부터는 중장기 ESG 경영 정책 수립과 실행력 강화를 위해 CEO가 직접 주관하는 월 단위 회의체인 ‘ESG경영위원회’도 신설했다.

ESG 경영, 불확실한 미래를 장밋빛 미래로 바꾸는 최선의 선택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주요 국가와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ESG 경쟁력을 차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 ESG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앞으로도 더욱 노력을 기해야 한다. CONE의 ‘2019 Z세대 퍼포스 스터디(Gen z purpose study)’의 조사에 의하면 Z세대의 90%는 기업이 ESG 이슈 해결을 도와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75%는 기업이 그 약속을 정말 좇는지 직접 확인하겠다고 답했다.16)

16) 출처: https://www.conecomm.com/research-blog/cone-gen-z-purpose-study ‘Holding Companies Accountable: 90% believe companies must act to help social and environmental issues and 75% will do research to see if a company is being honest when it takes a stand on issues.’

불확실성의 시대지만, 그만큼 미래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적극적으로 ESG 이슈를 선점하고 해결하는 기업에게 기회로 다가갈 것이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초 ‘Social Value 2030’을 선언했다. 동시에 D램과 낸드플래시 사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하고, ESG 경영을 강화해 인류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17)의 본격적인 실행에도 나섰다. 이는 미래 고객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 가능한 장밋빛 미래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17)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 고객, 투자자, 시장 등 파이낸셜 소사이어티(Financial Society)를 대상으로 SK 각 회사의 성장 전략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 총체적 가치(Total Value)를 높여 나가자는 경영전략.

※ 본 칼럼은 ESG에 관한 지식과 견해가 담긴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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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반도체가 구현한 또 하나의 역작 /marvel-spider-man/ /marvel-spider-man/#respond Tue, 15 Dec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marvel-spider-man/ 도비라.png

▲ 사진제공: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뉴욕 맨해튼 마천루를 종횡무진 경쾌하게 뛰어노니는 박진감, 거미줄을 그네 삼아 노을 진 창공 속으로 치솟는 상쾌함, 생체 전기 베놈 펀치로 공간을 응축한 듯 휘날리는 공격의 타격감까지. 뉴욕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액션 게임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Marvel’s Spider-Man: Miles Morales)’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2018년 출시된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이 슈퍼 히어로 게임 역사상 최대 기록인 2,000만 본의 판매고를 기록한 만큼, 이번 작품 역시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 5 개막을 함께한 독점 타이틀 중에서도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전작의 개발사인 인썸니악 게임즈(Insomniac Games)는 2019년 2억 2,900만 달러에 소니에 인수된다. 스파이더맨의 반짝 성공 덕분에 소니가 사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향후 소니의 최신 하드웨어를 가장 잘 활용해 줄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고 싶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PS5와 스파이더맨의 만남…디테일과 속도감, 두 마리 토끼 모두 잡다

게임 콘솔 시장에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은 소프트웨어의 승리였다.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처럼 작품성으로 하드웨어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전용 타이틀을 확보한 덕이었다. (연관기사 몰입감의 차원이 다른 ‘실리콘 시네마틱’의 새로운 예술 형태, The Last of Us Part II) 그 성과는 지난 PS4 시대 XBox에 대한 지속적 우위의 비결이 됐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라고 총칭되는 콘텐츠 군단의 14번째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가 된 인썸니악은 하드웨어 활용의 예술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달인 집단이었다. 이미 오큘러스를 위한 독점 VR 타이틀을 3편이나 만들어냈을 정도로 신기술 흡수와 트렌드에 능했다. 특히 독자적 자체 엔진에 녹아 있는 인썸니악의 기술은 SIMD1)와 스레드(Thread)2)를 잘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 Single Instruction Multiple Data. 하나의 CPU 명령어를 동시에 여러 데이터에 적용해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파를 여러 줄 손에 쥐고 채썰기를 하는 식이다

2) 동시 병렬 처리를 위해 처리를 분할하는 단위. 하나의 프로세스 내에서 여러 스레드가 각각의 실행 맥락을 만든다.

인썸니악 게임의 움직임에는 생동감이 있다. ‘라쳇 앤 클랭크(Ratchet & Clank)’처럼 쏜살같이 3차원 공간을 내달리는 느낌은 압권이다. 이는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파이더맨이 돼 광활한 뉴욕시 어디로 뛰어들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손에서 거미줄을 놓고 어느 위치에 내려앉아도 순간적으로 데이터를 빨아들여 주변 풍경을 준비해 놓기 때문이다. 기술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코드로 차별화를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처음에 준비해야 할 기본 데이터의 양이다. 하드디스크가 달린 PS4에서는 대작 게임일수록 처음 시작할 때 한참을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PS5의 초고속 SSD는 무려 초당 5.5GB의 전송 속도를 자랑한다. 이는 현재 시판 PC용 양산품으로는 흉내 내기 힘든 특별한 제작·설계 사양이다. 어지간한 준비는 1초 만에 끝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플레이어가 게임 로딩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로딩하는 동안 게임 팁을 알려주거나 해 주의를 분산하는 것이 상례였다. 특히 게임 중 죽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 그 좌절감에 로딩 시간은 더 길어 보일 때도 있는데, 그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전체 체험이 한층 쾌적해졌다.

PS5에서는 특히 초반 로딩 시간이 매우 짧아 마치 동영상이라도 튼 듯 바로 게임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다. PS5의 로딩 속도는 PS4의 몇 배 수준이 아니라 최소 10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반사되는 빛 하나하나까지 구현한 그래픽, 이를 가능케 한 첨단 반도체 기술

PS5 런칭 타이틀이 되는 것은 나름의 영예지만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도 아직 PS5 전용 게임은 아니다. 시기상 시장을 지배 중인 구기종 PS4를 함께 지원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 덕분에 두 기종에서의 성능 차이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영상미다. PS5에는 피델리티(Fidelity) 모드가 마련되어 있는데,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3)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통유리가 많은 모던한 고층 빌딩, 특히 겨울 뉴욕의 젖은 노면에 비치는 도심의 풍경은 석양의 빛과 어우러져 빛의 향연을 펼친다. 게임 속 세상의 다양한 광원이 직간접적으로 뿌리는 빛의 입자 수를 생각해 보면 엄청난 양의 컴퓨팅 자원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게임 속 세상의 빛의 움직임, 그중에서도 반사를 광선(Ray) 하나하나 계산하듯이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기술. 시각적 렌더링이란 결국 모두 빛의 효과이므로, 극도로 사실적인 재현이 가능하다.

라이프(12월)-김국현대표칼럼3.jpg

오픈 월드4)의 자유도 높은 게임으로 대도시 뉴욕을 여행하는 기분은 색다르다. BLM5) 벽화 등이 특히 눈에 띈다. 흑인 문화의 심장이 된 이스트 할렘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히스패닉도 많이 거주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주인공을 흑인과 히스패닉의 혼혈로 설정한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이런 주인공이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가족이란 소재로 잘 풀어냈다. 스토리만 놓고 평가해도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스토리텔링에 잘 녹여낸 수작이라 할 만하다.

4) 동선이 제한되는 스토리 중심 게임과 달리 비선형 스토리와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게임 방식.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플레이의 제약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5)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뜻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대처에 대항하는 인권운동.

‘시스템 셀러(System Seller)’라는 말이 있다. 특정 게임이 정말 하고 싶어서 그 시스템까지 사게 만드는 게임을 말한다. PS4와의 격차는 두드러지지만, PS4로도 즐길 수 있기에 과연 시스템 셀러의 역할을 해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겨우 PS5가 출시된 시점일 뿐. 인썸니악은 “아직은 모두 PS5의 겉만 긁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초당 5.5GB의 SSD, 초당 450GB의 GDDR6 메모리의 위력은 이제부터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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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위에 펼쳐진 마블의 새로운 유니버스 ‘마블 어벤져스’ /marvel-avengers/ /marvel-avengers/#respond Sun, 04 Oct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marvel-avengers/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무적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 게임 ‘마블 어벤져스’ 타이틀 이미지(사진제공 :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무적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게임업계에서는 캐릭터 및 세계관을 포함한 콘텐츠 사용 권리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다. 원작 만화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영화와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로 확산되며 세계적인 규모의 팬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 무적의 IP로 만들어진 게임업계 하반기 최고의 기대주 ‘마블 어벤져스’가 지난 9월 초 베일을 벗었다.

‘마블 어벤져스’로 살펴본 대형 IP의 게임화 메커니즘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 근래 이 IP로 제작된 영화들의 성공 규모를 보면, 이제는 이 IP로 무엇을 하든 사람들이 사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친근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가져와도 이를 좋은 게임으로 만드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캐릭터와 설정은 가져오면서 IP의 큰 기둥 중 하나인 스토리를 그대로 살려서 쓰는 일은 많지 않아서다.

특히 이런 경향은 미국 콘텐츠 기업이 보유한 IP들의 경우에서 두드러지는데, 스토리와 캐릭터가 한 명의 작가에 의해서 완결되고 통제되는 경우가 드문 분업 체제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마블이나 DC코믹스와 같은 판권사가 캐릭터 설정과 세계관을 관리한다. 이 구조에서 스토리는 확산될수록 좋다.

마블의 법률 문서에 따르면 회사 산하에 이미 8,000여 개 캐릭터가 있다. 판권사는 일종의 매니지먼트 회사다. 캐릭터들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관리하지만 어떤 캐릭터든 대중에 새롭게 노출될 기회가 온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그렇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ble Cinematic Universe, MCU. 마블 코믹스에서 출간된 만화를 원작으로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 시리즈.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이 활동하는 영화적 세계관을 의미하기도 한다)가 탄생했고, ‘마블 vs 캡콤’처럼 캐릭터들을 통째로 게임사에 대여해서 스튜디오 간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게임을 유통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의 앞뒤 연결이 안 되는 건 기본이고, 동시의 아예 평행 우주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마블은 ‘유니버스(Universe, 스토리가 구축되는 세계관)’라는 편리한 단어를 애용한다. 이에 따르면 영화에서 일어난 일은 영화의 설정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 게임은 영화는 물론, 원작인 만화와도 사뭇 다른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누구도 “왜 이렇게 이야기가 제멋대로냐”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세계관이 다르다”고 말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기존 스토리와 다르다 보니 어딘가 어색하다. 특히 만화는 본 적 없고 영화 전편(全篇)을 정주행(하나의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보는 시청 방식)한 한국 게이머들은 뇌리에 각인된 익숙한 얼굴들과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주는 어색함을 떨치기 힘들다. 아무리 디지털 시네마틱스(Digital Cinematics)가 진보해도 기억 속 할리우드 배우를 이길 수는 없나 보다.

영화를 게임으로 만드는 일의 고단함

업계에서는 IP 게임에 대한 오랜 두려움이 있다. 다큐멘터리에도 자주 등장하곤 하는 희대의 ‘망작’ 게임 E.T.도 나름 스티븐 스필버그의 승인을 거쳐 출시된 게임이다. 심지어 그는 개발자를 “천재”라고 불렀다. 하지만 결과는? 좋은 IP를 가지고도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지 못한 게임의 운명을 알려주는 일화가 되었다.

E.T.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려고 사실상 개발자 홀로 5주 만에 급조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몰락하던 비디오 게임업계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자신 대신 실패한 게임 하나를 탓했다.

IP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저런 IP로 그것밖에 못 만드느냐”는 마음의 목소리가 늘 맴돈다. 특히 어벤져스와 같이 강력한 IP는 큰 기대와 함께 팬덤(Fandom)이 덤으로 딸려오기에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2020년, 대작 게임이라면 실사 느낌이 당연시되는 시대다. 이제 게임은 인간이 지닌 고도의 추상 능력을 절절히 자극하는 감각적 보조재가 아니라, 고도로 사실적인 시청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몰입형 종합 미디어가 됐다. 5주 만에 홀로 개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수백 명이 투입돼도 5개월 정도는 우습게 연기되기도 한다. ‘마블 어벤져스’도 원래 5월 출시 예정이었으나 9월로 일정이 연기된 바 있다.

이는 요즘 게임이란 자금이나 인력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사전에 축적돼 있지 않으면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기업만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게임 엔진(Game Engine, 게임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돕는 각종 툴과 소스 코드를 담은 소프트웨어)의 존재다.

게임 완성도에 기여하는 게임 엔진의 역할

‘마블 어벤져스’의 개발사는 ‘툼레이더’를 부활시켰던 실력 있는 개발사다. 또한, 게임에 IP를 제대로 녹일 줄 아는 팀이다. 마블 어벤져스는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와 사실상 같은 엔진을 쓰고 있다. 스퀘어 에닉스의 개발 스튜디오인 크리스탈 다이나믹스의 자체 개발 엔진인 ‘파운데이션 엔진’이 그것. 이 엔진은 기존 버전인 ‘크리스탈 엔진’에서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이처럼 대부분의 대작 개발사들은 독자적 엔진을 보유하고 발전시켜오고 있다. 여유가 좀 있고 오래 입으려 한다면 기성복보다는 맞춤복을 사는 게 당연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개발사들이 대작 게임을 만들 때, 독자적 게임 엔진을 쓰는 이유로 기술적 차별화를 꼽을 수 있다. 올해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미국 게임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 Epic Games가 개발한 게임 엔진)에 적용된 ‘퓨어헤어(AMD TressFX의 개량)’ 기능이 대표적인 예다. 주인공의 머리카락 표현과 같은 기술적 차별화에 특화된 기능으로, 생머리 한올 한올의 자연스러운 흩날림은 물론 눈발이 머리카락에 묻는 것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 엔진은 필요한 것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언리얼이나 유니티(Unity Engine, 덴마크 소프트웨어 개발사 Unity Technologies가 개발한 게임 엔진) 같은 범용 상용 엔진은 제작 중인 게임에는 개발 초반에는 쓸데없는 오버헤드(Overhead, 어떤 처리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간접적인 처리 시간이나 메모리)가 따라붙어 귀찮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건 경제적 문제다. 얼마 안 되는 엔진 사용 수수료라도 만들어진 게임이 팔리면 팔릴수록 부담이 된다. 일반 상용 엔진 라이선스의 단위당 증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시점이 반드시 오니,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초기 투자는 보람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현장에서 단련된 범용 엔진과는 달리 자체 개발 엔진은 문제가 생겨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모든 건 자체 책임이다. 이번 ‘마블 어벤져스’도 유난히 버그가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요구 조건을 모두 충족해도 미션이 완료되지 않거나 크레딧(Credit, 게임 내 화폐)이 사라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래픽 카드에 따라 크래시(Crash, 게임 플레이 도중 갑자기 게임이 강제로 종료되는 오류 현상)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발전이 가져올 새로운 게임 환경

다행히도 게임은 영화와는 달리 출시 후에도 필요한 기능이나 콘텐츠를 계속 추가할 수 있다. 일단 한 번 CD로 인쇄되고 카트리지가 제작되면 버그 수정이 불가능하던 시절과 달리, 요즘 게임들은 반도체 위에 로딩(Loading)되거나 다운로드(Download)돼 실행된다. 반도체 위에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국현 칼럼(어벤져스) 반도체 잡학사전 수정본.jpg

특히 수많은 캐릭터를 보유한 마블의 경우 원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캐릭터와 지역 등 설정을 추가할 수 있어, 싱글 캠페인에 익숙한 개발사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준다. 실제로 곧 DLC(DownLoadable Contents)로 호크아이가 추가될 예정이며, 플레이스테이션(Play Station, 이하 PS) 한정 히어로도 등장할 예정이다. 아마 소니와 전속 계약 상태인 ‘스파이더맨’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류가 발생하거나 새로운 하드웨어가 등장해도 패치나 확장팩 등 소프트웨어로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지금 PS4용 타이틀을 구매하더라도 무료 업그레이드로 PS5에서도 즐길 수 있고, XBox도 마찬가지로 차세대 시리즈X 타이틀을 무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4K(3,840×2,160) 해상도와 60fps(Frames Per Second, 1초에 보이는 화면 수) 수준의 화질이 확보될 테니, 한 번 즐긴 게임도 다른 느낌으로 다시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적 개선을 전제로 한다. ‘마블 어벤져스’도 차세대 게임기로 업그레이드되면 GPU로 텍스처 해상도를 향상한다거나 개선된 AO(Ambient Occlusion, 틈과 틈 사이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술)와 SSR(Screen Space Reflection, 젖은 바닥 면에 빛이 반사되는 것을 재현하는 기술)을 제공해 줄 예정이다. 이는 모두 새로운 반도체와 이를 구동할 업그레이드된 코드가 가져오게 될 변화다.

특히 차세대 게임기들에 탑재된 대용량 저장장치(Solid State Drive, SSD)의 속도는 상당해서, 로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처럼 로드가 갑자기 오래 걸리는 문제로 게임 흐름을 저해하는 일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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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감의 차원이 다른 ‘실리콘 시네마틱’의 새로운 예술 형태, The Last of Us Part II /the-last-of-us-part-ii/ /the-last-of-us-part-ii/#respond Thu, 30 Jul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the-last-of-us-part-ii/ 도비라.jpg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전작 발매 이후 7년 만에 공개된 The Last of Us Part II는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 게임에 대한 평은 극렬하게 양분돼 플레이어를 논란으로 초대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플레이어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긴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 때로는 불쾌하기도, 누군가에게는 쓰라리기도 한 뒷맛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 화제의 신작이 어떠한 생각거리를 건네주고 있는지 일체의 스포일러 없이 살펴보자.

The Last of Us Part II, ‘뜨거운 감자’가 되다

The Last of Us Part II 개발사인 너티독(Naughty Dog)은 ‘싱글 플레이어 단일 줄거리 게임’이라는 전통적 어드벤처 게임 문법에 충실한, 요즘은 보기 드문 정통파 게임 회사다.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의 영속적이고 짭짤한 과금(서비스를 제공한 측에서 서비스를 사용한 사람에게 사용료를 받는 것) 모델 대신, 작품 판매고에 의존해야 하니 쉽지 않은 비즈니스다. 블록버스터처럼 개봉과 동시에 확실한 대히트를 터뜨리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하기 힘든 모험적인 사업 방식이다. 하지만 그저 모험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언제나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이기 때문.

1984년 미국에서 창업한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너티독은 2001년 소니(SONY)에 합병된다. 이후 노선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 전용 독점 타이틀과 함께 전용 게임 엔진 및 툴을 제작·제공하는 팀을 함께 꾸린다. 양질의 명작 타이틀을 독점하는 것은 PS 생태계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에 모회사 소니도 밀어줬다.

잘 만들어진 싱글 플레이어 단일 줄거리 게임은 영화, 소설과 같은 종합예술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수동적으로 쳐다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 비해 게임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플레이를 하든 엔딩은 같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지만, 플레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임은 영화와 다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게임 속 행동이 모두 시나리오 속에 운명처럼 정해져 피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플레이어는 조이스틱이나 마우스, 키보드로 그 순간 버튼을 눌러 스스로 상황을 만들며 그 속에 더 몰입한다. 엔딩까지 수십 시간에 이르는 플레이 타임이 쌓여 종반으로 갈수록 플레이어는 가상의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어간다. 이를 통해 전통적 예술 형태로는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장기적이고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만약 각각의 플레이어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거북한 감정이 플레이 중 발생한다면 이는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불편한 장면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특히 전작을 통해 나름의 기대를 형성해 버린 속편의 경우에는 리스크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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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왼쪽, 94 Metascore)와 일반 플레이어(오른쪽, 5.5 User Score) 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출처 : 메타크리틱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러한 이유로 평론가와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 이례적인 별점 차이가 났다. 이용자들이 별점 테러를 하기에 이른 것. 하지만 성인 대상 게임에서 윤리관이나 성 지향성과 같은 플레이어의 가치관을 직접 묻는 콘텐츠는 늘 있었다. 왜 유독 이 게임이 유난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The Last of Us Part II만의 남다른 ‘몰입감’에 있다.

모던 게임의 강력한 감정적 연결 기법 ‘컷신’, 현실을 게임 속으로 가져오다

The Last of Us Part II의 그래픽은 유려하다. 이 현실감 넘치는 충실한 재현은 감정 조작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컷신(Cut-scene, 게임 플레이 도중에 컷으로 삽입되는 스토리 영상)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섬세히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컷신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비디오 게임 팩맨(Pac-Man)이다. 그냥 퍼즐을 풀거나 적을 무찌르는 오락을 넘어 주인공의 처지와 사연을 공감하게 해 플레이어를 게임의 세계에 감정적으로 연결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스토리로 동기부여하고 정서적 준비를 시키는 장치로서 컷신의 전통은 유서 깊다.

컷신을 만들기 위해 제작사는 프로 영화배우의 연기를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실물의 움직임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일)하고 동시 녹음도 한다. 몸짓은 물론 표정과 리액션(Reaction), 애드리브(Ad-lib)까지 모두 캡처해 디지털화하고, 이를 게임 속에 복제하는 것.

때때로 컷신은 영화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기도 한다. 특정 연기 장면이 동영상으로 고정돼 새로운 연기를 담기 위해서는 재촬영이 필요한 영화와 달리 모션 캡처된 데이터는 반도체 위에 살아있다. 컷 앤 페이스트(Cut and Paste, 잘라 붙이기)를 통해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연기 순서나 연기 상대, 배경도 바꿀 수 있으며 재활용도 가능하다.

결국은 3D 폴리곤(Polygon, 3D 컴퓨터 그래픽에서 면의 조합으로 물체를 표현할 때의 각 요소)의 조합이기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후처리에 따라 그 생동감과 생명력이 오히려 이 세상 것이 아닌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관록 있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 데이터, 그리고 목소리는 하나하나의 재활용 가능한 어셋(Asset, 3D 모델이나 풍경화, 사운드 효과나 음악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완벽한 감정적 동요를 선사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마저 편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연기가 저장된 데이터에 카메라 시점을 새롭게 추가해 가며 다양하게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거쳐 플레이어들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최적의 타이밍을 맞추면 컷신이 완성된다. 납득될 때까지 개선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실리콘 시네마틱’의 위력이다.

게임은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참여형 실시간 연극’, 몰입감의 차원이 다르다

상업 영화의 CG(Computer Graphics, 컴퓨터로 만들어진 화상이나 영상) 제작 방법은 ‘프리(pre)’ 렌더링*(Rendering,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필름, 즉 영상 파일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뽑아내기 전에 렌더링이 먼저 완료된다. 하지만 현대 AAA 게임*의 삽입 영상, 즉 컷신은 영화처럼 단순히 비디오 파일을 만들어 때가 되면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게임 진행 도중에 ‘리얼타임 렌더링’, 즉 실시간으로 그 위에 그려낸다.

* 프리 렌더링(Pre-Rendering) : 영상이 실시간으로 렌더링되는 리얼타임 렌더링과는 달리, 사전에 렌더링이 완료돼 영상 기기에서는 출력 또는 재생만 가능한 방식
* AAA 게임(Triple-A Game) :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해 주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하고, 수백만의 판매량을 기본으로 기대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이처럼 게임에서는 능동적 영화 체험(Active Cinematic Experience)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The Last of Us Part II는 현존하는 게임기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그래픽 시스템을 완성했다. 인체의 움직임 및 표현은 물론, 물이나 불과 같은 어려운 물질을 그려내는 일에도 위화감이 적다. 폐허가 돼 녹지로 뒤덮인 시애틀 도심의 디테일, 빛과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프리렌더링된 CG가 아니라 지금 실시간으로 계산돼 반도체 위에 그려지고 있는 살아 있는 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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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게임은 반도체라는 무대 장치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필름과 종이 위에서 재생되는 스토리와 달리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The Last of Us Part II의 ‘버디 다이얼로그(Buddy Dialog, 게임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의사소통)’ 기능이 대표적인 사례. 이를 통해 내가 조작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컴퓨터가 조작해주는 파트너 캐릭터와의 일상적 회화가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이어진다.

마치 라디오나 팟캐스트(Podcast, 신문을 구독하듯이 인터넷을 통해 특정 콘텐츠를 구독하는 서비스)처럼 등장인물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와 추임새가 이어지는데, 캐릭터들의 개성에 빠져들다 보면 스스로 주인공이 된 듯 착각하게 된다. 이 대화는 스토리를 전개하고 게임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러나 이조차도 시간순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시공간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합돼 실연(實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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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of Us Part II의 ‘버디 다이얼로그(Buddy Dialog)’ 기능. 플레이어가 주인공 캐릭터를 조작하고 있으면 상황에 맞게 주변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간다.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즉흥 발언들이 반도체 속에 충분히 저장돼 플레이어 상황에 맞게 취사 선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임 진행을 서두르거나, 모든 오브젝트를 꼼꼼히 다 즐겨보거나 게임 플레이어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무엇이 빠지고 빠지지 않아야 할지 그리고 빠지더라도 위화감 없이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갈지는 반도체에서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즉 모든 스토리와 캐릭터는 저마다의 메모리 공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위의 게임 체험, 예술이라는 새로운 ‘도달점’에 이르다

게임 표현의 사실성이 높아진 시대. 대작 게임은 대작 영화보다 완성까지 몇 배나 오랜시간이 걸린다. The Last of Us Part II도 6년의 제작 기간이 걸렸다. 또, 대개의 대작 영화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보기까지 드는 시간은 평균 25시간. 드라마 1~2시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게임 내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다. The Last of Us Part II는 곧 쓰러질 적, 스쳐 지나갈 NPC(Non-Player Character, 유저가 아닌 게임 속 등장인물)라고 하더라도 모두 메모리 용량과 연산 프로세스를 부여받고,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대화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들의 대화에서 당황함과 두려움이 전해진다. NPC마다 감정과 연결된 대사가 생성되는 셈이다. 플레이어가 적을 쓰러뜨리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동료들이 뛰어온다.

문제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좀처럼 공감되지 않는 악역을 상당 기간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다. 상대의 시점을 화자로 삼는 일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이미 있었던 일이다. 모두 같은 인간,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이해하게 하는 장치이지만, 게임에서는 그 불편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돼야 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순간 마주하는 상대들과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감정을 행동으로 확인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냥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도 없다. 정의와 윤리를 되묻는 듯한 결정적 컷신에서도 버튼을 누르라는 아이콘이 깜빡인다. 현실의 플레이어들은 주저하고 머뭇거리면서도 게임 진행을 위해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선택에 이어 게임이 진행되면 당황할 새도 없이 캐릭터가 쥐고 있는 칼날이 적에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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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of Us Part II는 인간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게임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윤리적인 인사이트(Insight)를 선사할 수 있다. 게임을 통해 불편한 입장과 상황에 놓이고 직접 움직여 불편한 테마에 다가갈수록,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는 감정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믿어온 정의와 윤리도 결국은 제각각의 처지에 의해 만들어진 상대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소한 느낌에 젖기도 한다.

게임을 궁극의 종합예술 또는 최종적 예술 형태라고도 말하는 연유도 이 거북함에 있다. 예술은 우리의 평온한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질타하며, 괴롭힌다. The Last of Us Part II는 플레이어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여러 해석을 내놓게 하지만, 결국 플레이한 모두의 마음을 거칠고 아프게 한다.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실연은 그렇기에 2020년 현재 이미 어엿한 예술 형태가 됐음을 이 게임은 알려주고 있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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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가 대세! ‘커맨드 앤 컨커’ 리마스터로 돌아오다 /command-and-conquer/ /command-and-conquer/#respond Sun, 05 Jul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command-and-conquer/ 25년 전 출시된 ‘커맨드 앤 컨커(Command & Conquer)’ 의 리마스터판이 등장하며 게임시장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커맨드 앤 컨커는 실시간 전략게임(RTS, Real-Time Strategy) 장르를 만든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는 명작이지만, 너무 오래 전 게임이라 리마스터 성공에는 의문부호가 달렸던 것이 사실. 하지만 실제로 출시된 이후에는 평단의 평가도 좋고 판매 추이도 그럴듯한 모양새다.

리마스터는 원래 ‘레코딩 마스터(Recording Master)’, 즉 공장으로 보내 음반을 대량으로 찍어낼 마스터 주형을 다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을 다시 하는 이유는 하나, 음질이든 취향이든 오리지널에 새로운 상품성을 부여해 새로운 기분으로 팔기 위해서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리마스터의 의미도 달라져, 오리지널 음원으로부터 최고 음질로 뽑아내 재구성하는 일을 의미하게 됐다. 음반에서 나온 말이지만 영화 분야에서도 널리 정착된 관행이 됐고, 요즈음에는 게임 분야에서도 애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마스터는 원화나 원본 필름처럼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원천 소스가 남아 있을 때나 쉬운 일이다. 진보된 기술로 창고의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면 고해상도 신작 디지털판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이란 원래부터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다. 디지털은 0과 1의 배열로 수렴하게 하는 일인 만큼 기본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정보의 취사선택과 누락을 피해갈 수 없다.

디지털은 세월의 열화는 비켜갈 수 있지만, 그 시점의 기술적 한계에는 그대로 노출된다. 그 한계는 곧 용량과 속도. 모두 반도체가 극복하려고 애써 온 분야들. 게임에게 반도체는 곧 매체였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처럼 플라스틱판으로 유통돼도 게임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결국 반도체 위에 올라가야 했다.

‘반도체’의 진보로 가능해진 대작 게임… 그만큼 치솟은 제작비는 부담

아무리 예전이 좋았다고 이야기해도 절대 그 시절이 좋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반도체가 만드는 디지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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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임 콘솔인 소니(Sony)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을 예로 들어 보자. 초기 버전은 메모리 2MB에 그래픽 메모리 1MB에 불과했다. PS2에서는 각각 32MB, 4MB로 16배나 늘어났고, PS3이 되자 256MB, 256MB로 8배 증가했다.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에 따라 용량과 성능이 파죽지세로 향상됐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PS4의 경우 8GB(통합)가 됐으니 반도체의 진보는 실로 놀랍다.

게임은 메모리라는 매체 위에 대량의 ‘어셋(Asset, 3D 모델이나 풍경화, 사운드 효과나 음악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시간으로 풀어 놓고 처리하는 식으로 실현된다. 게임이란 내 시선과 손끝에 따라 전혀 다른 전개를 보여줘야 하고, 0.1초 뒤에 벌어질 그 모든 가능성의 조합이 모두 메모리 위에 있어야 한다. 보통 게임 PC의 사양이 사무용보다 좋은 이유다.

메모리 공간이 점점 확장되며 표현력의 제약이 사라져갔다. 화면 크기도 커졌다.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의 해상도는 320×240였지만 요즈음은 4K(3840×2160) 게임의 시대. 4K로 단순히 영상을 재생하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인데,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이 만들어낼 가능성을 미리 모두 준비하고 있어야 하니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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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실사 같은 AAA(Triple-A, 대작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로 영화의 블록버스터에 해당) 게임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메모리가 2MB이던 시절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메모리만큼 제작비도 치솟았다.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대충 구현할 수 없고, 모든 순간을 영화 같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양에 힘이 너무 들어간 채 정작 게임성은 고전만 못 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엎어진 프로젝트도 있었다. 요즘 게임 개발 프로젝트들은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싹수가 노랗다면 매몰 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손절하는 편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2013년 판도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팀이 해산되며 묻히고 말았다.

‘리마스터링’, 부담스러운 제작비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재조명 받다

AAA 대작 예산의 하한선이 이제 올라도 너무 올라 버렸다. 과거의 성공 체험을 되살려 리스크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익숙한 것에 의존하게 되는 마음이란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버리기가 쉽지 않다.

게임 업계에서는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종종 유행되곤 했는데, 리메이크나 리부트는 보통 그 느낌 그대로 아예 새롭게 만드는 게임을 뜻한다. 파이널 판타지 7도 최근 리메이크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 역시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조금 더 저렴하게 과거를 소환할 수는 없을까?

그냥 옛날 걸 다시 내다 팔면 어떨까? 역시 옛날이 좋았다며 모두 향수에 바로 빠져주면 좋겠지만, 주말의 명화 틀 듯 25년 전 게임을 4K 스크린에서 돈 받고 틀 수는 없는 일이다. 감동에 앞서 위화감이 먼저 든다.

1996년의 퀘이크. 최초의 3D 1인칭 슈팅 게임(FPS, Frist-Person Shooter)으로 칭송 받은 이 게임은 약 200폴리곤(Polygon, 주로 3D 컴퓨터 그래픽에서 면의 조합으로 물체를 표현할 때의 각 요소)을 화면에 뿌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자 캐릭터 하나가 수천 폴리곤으로 구성되기에 이른다. 다시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게임에 사용되는 폴리곤 수는 십만을 거뜬히 넘기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폴리곤을 세는 일의 의미가 퇴색돼 간다. 일러스트에서 픽셀을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해진 것처럼,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작화와 표현력, 그리고 재미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게임의 원점으로 돌아가 그 게임의 작화력과 표현력, 그리고 게임성을 그대로 살려 보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리마스터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사골을 우리는 일, 게임의 로직이나 스토리, 즉 코드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어셋만 손보는 일을 말한다.

가장 직접적인 리마스터링은 시청각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사운드와 달리 그림은 억지로 해상도만 키우면 번지고 만다. 깔끔하게 도트가 떨어지게 해 레트로 감성을 살릴 수도 있지만, 이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게임의 풍경이나 배경화면 등의 비트맵 텍스처(Texture, 질감 또는 색상이나 명암과는 독립적으로 객체의 표면에 대해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을 특성 짓는 속성들의 집합)는 해상도 차이를 여실히 드러내, 낡은 느낌의 주범이 된다.

게임 풍경의 벽지나 인물의 스킨만이라도 새로 그려서 섬세한 고해상도로 바꿔줘도 게임 인테리어는 달라져 보인다. 3D 그래픽의 경우 폴리곤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리마스터링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12면체를 구체로 만드는 정도나 쉽지, 결국은 모델링이 다시 필요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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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어설픈 3D 얼굴은 애초에 섬세하게 그려 놓은 좌표 없이는 아무리 ‘풀옵션’을 적용해도 갑자기 미남미녀가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 폴리곤 수는 적은데 텍스처만 고해상도라면 어딘가 약간 언밸런스해 보일 수 있다. 목각 인형 같은 정육면체에 정밀 텍스처를 가면처럼 입혀 놓는 셈이다. 하지만 텍스처만 개선해도 확실한 효과가 나오니 텍스처 단순 교체는 손쉽게 애용되는 리마스터링 기법이다.

리마스터링의 3가지 최신 트렌드 ‘참여형 개선, AI 업스케일, 실시간 리마스터링’

텍스처를 개선하는 건 의외로 손쉽기에 팬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인기 고전 게임을 중심으로 팬들이 만드는 ‘업스케일 모드(MOD, 이미 출시된 게임의 내부 데이터를 사용자가 수정해서 새롭게 만들어낸 게임)’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커맨드 앤 컨커도 이번 리마스터판에서 사용자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중요 성과로 꼽았으며 관련 모듈을 오픈소스(Open source)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처럼 게임회사와 팬 모두가 함께 하는 ‘참여형 개선’은 리마스터링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최근 리마스터링의 또 다른 트렌드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활용한 ‘AI 업스케일’이다. 토파즈 랩스(Topaz Labs)에서 개발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인 ‘Gigapixel AI’ 같은 도구들도 상용화 됐는데, 원리는 기계학습이다. 뭉개진 이미지들이 ‘본 모습은 대부분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패턴으로 학습시켜 두면, 새로운 저해상도 이미지를 접하더라도 고해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젠 어셋을 사람이 하나하나 새로 그릴 필요 없이, 학습한 기계의 기억에 통째로 외주를 준다. 많은 팬들의 업스케일 모드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실시간 리마스터링’도 최근 떠오른 기법이다. 저해상도 이미지로부터 고해상도 이미지를 뽑아내는 일이 디자이너가 아닌 칩에 의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기존의 어셋을 한 땀 한 땀 다시 깁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일괄 변환하되, 이것조차 실시간으로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4K TV는 패널의 질뿐만 아니라 칩에 따라 화질이 꽤 달라진다. 4K는 의외로 영상 소스가 부족한데, 최신 TV는 각종 인공지능 칩으로 저해상도 영상을 실시간 업스케일해 4K에 뿌려주기 때문. 이와 같은 일이 이제 게임에서도 벌어진다.

▲ 사진제공 : 엔비디아

최신 비디오 카드 기능 중 DLSS(Deep Learning Super Sampling, 딥 러닝을 사용하여 원본 저해상도 이미지의 고해상도 이미지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가 대표적인 사례.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X-box, 가정용 PC에 준하는 성능과 그래픽 표현력을 가진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차세대 콘솔 X에서 구형 게임을 작동할 때, 자동으로 HDR(High Dynamic Range, 가장 밝은 곳부터 가장 어두운 곳까지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과 유사하게 밝기 범위를 확장하는 기술)과 120fps(Frame Per Second, 초당 프레임 수)를 지원하는 기능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실시간 리마스터링 중 가장 흥미로운 기술은 실시간 3차원화다. 2D 고전 게임을 분석해서 3D로 만들어주는 기술로, 닌텐도 패미컴용 고전 게임을 롬(ROM, Read Only Memory 컴퓨터의 읽기 전용 기억장치)에서 그대로 읽어 들이면 어셋을 적절히 3차원화해 즐길 수 있게 하고, 이를 다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용으로 업스케일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제작사나 유통사가 아닌 재야의 독지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바야흐로 참여형, AI 업스케일링, 실시간 리마스터링의 시대가 오고 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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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아닌 필수!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네 가지 실천법 /digital-transformation/ /digital-transformation/#respond Sun, 24 May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digital-transformation/ 김국현도비라02.jpg

근래 기업들의 화두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기술로 변신하자’는 이 경영 혁신 운동은 기업 스스로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회사라고 여기도록 채근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먼 이야기나 남의 이야기라고 여겨지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면서 갑자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급히 실천돼야 할 현실이 됐고, 우리 모두 당사자가 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도 성장을 이끌어낸 이들은 그 비결로 빠짐없이 ‘디지털로의 빠른 전환’을 꼽고 있다. 비대면에서 무인화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비즈니스 모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2020년 현재 리딩 기업들이 꾀하고 있는 변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판매/제품혁신 등 특정 경영 활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창출해 낸 모범 사례)에서 얻은 교훈으로,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네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해 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선 온·오프라인 융합부터 시작하라

많은 기업은 시급한 당면 과제로 온라인화를 손꼽는다. 종래의 업태에 온라인 서비스를 융합함으로써 ICT의 부가가치를 기존 오프라인 사업에 더하는 것은 긴급한 안건이 되고 있다. 실행력이 빠른 온라인 기업들에 의한 시장 교란이 더 심해졌기 때문.

특히 요즘 같은 격동의 시기에는 전통적 업태를 뒤흔들 수 있는 신규 참여자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등장한다. 그들은 신선한 가설을 설정하고 곧바로 실천하며, 업의 기본 전제를 뒤흔든다. 고객을 포함한 파트너와의 관계를 임의로 재구성하는 일도 가능해지는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여파는 크다.

그렇지만 신규 참여자의 승률이 그렇게 높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기존에 가진 기득권을 전략적으로 살릴 수 있다. 선도 기업은 풍부한 리소스로 저인망식(底引網式, 샅샅이 구석까지 살피고 조사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으로 그물을 바닥까지 넣어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방식의 ‘저인망식 어업’에서 유래) 실험이 가능하고, 업에 대한 통찰력(Insight)도 갖고 있다. 작게 시작하고 빨리 배우는 스타트업처럼 대기업의 몸놀림이 가벼울 수는 없지만, 업력을 통해 확보한 기존 고객과 검증된 인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대기업만이 가진 강점이다. 우리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디지털이 그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대기업 역시 전체를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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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할 필요도 없다. 직영점 위주 일본 외식 프랜차이즈인 와규마피아(Wagyumafia)는 코로나 사태로 외식 수요가 급감하자, 휴업 시 임대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계약한 점포 위주로 점포의 반 이상을 전격 휴업했다. 직원을 나머지 점포로 분산 배치하거나 시프트를 조정해 고정비를 절감한 후, 온라인을 통한 반제품 판매와 배달에 집중했다. 그 결과 코로나 사태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완벽한 디지털화를 꿈꾸지 않아도 가능한 선부터 디지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경 변화에는 즉시 적응해야 한다. 그 찰나의 변혁을 순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의 특기다.

‘기회는 열려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라

지난 10년간 오프라인 매장을 쇼룸처럼 활용만 하고 구매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하는 소비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그렇게 온라인 상거래의 거인들은 점점 커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매장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미국 오프라인 유통 프랜차이즈인 베스트바이(Bestbuy)는 자사 상점 내에 제조사의 팝업 스토어 등을 만들고 임대료를 보조받았다. 또 온라인이 꼭 싼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미끼 상품을 전략 배치하는 등 가격 역전 현상을 소비자들이 느끼도록 했다. 온라인이 더 편하다고 여기지 않는 소비자층은 여전히 많다. 설치나 A/S 등 살가운 대면의 서비스를 원하는 전자제품을 살 때, 또는 지금 당장 구매해야 할 때와 같이 오프라인이 선호되는 여러 고객의 사정이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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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태생의 기업만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의 ‘가치 사슬의 연쇄’, 즉 ‘고객 여정(Customer Journey)’ 속에는 플랫폼을 창출할 크고 작은 기회가 잠재돼 있다. 애플 스토어의 ‘지니어스(Genius, 숙련된 전문가로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수리해주는 A/S 및 고객 대응 전문 직원)’처럼 고객 서비스직을 전문화하고 직원에 대한 보상 구조를 손본다면 오프라인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가치 제안도 시험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통 체인의 경우 지방을 집중 공략해, 노인층을 위한 전문 방문 서비스 플랫폼을 진행 중이다. 업의 본질을 아는 이들이라면 이미 벌어지고 있는 비즈니스 속에서 플랫폼을 창출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아직 디지털에 포섭되지 않은 고객들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일부터 시작해 스스로 디지털 전환을 시도한 셈이다.

모든 것이 단번에 온라인으로 빨려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시간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여유롭지는 않다.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니다. 지금처럼 오프라인이 도외시되고 비대면 서비스가 오히려 선호될수록,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 거인들은 세력을 늘려갈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열려 있는 플랫폼과 생태계에서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어쩌다가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그리고 소비자가 그걸 원한다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업태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될 수 있다. 우리는 ICT의 역사에 걸쳐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목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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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점진적으로 그리고 연속적으로 실천하라

PC가 등장할 때도, 웹이 등장할 때도, 스마트폰이 등장할 때도, 경영 전략의 디지털화 요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매번 ‘고도화’니 ‘차세대’니 하는 단어들을 가져다 붙이며 ‘무조건 변해야 산다’고 외쳤다. 하지만 근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들은 이와는 다르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바뀌지 않더라’는 교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시스템’의 시대는 가고 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몇 년간 준비한 후 팡파르와 함께 한 번에 바꾸는 방식은 시장과 고객이 바뀌는 방향과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최고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유연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만들어 가며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신기능을 실무에 적용하거나 고객에 배포하는 속도의 차이가 빅테크 기업과 보통 기업 사이에서 200배까지 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과장이 아닌 것이 CI/CD(Continuous Integration/Continuous Delivery, 코드를 자주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통합하고,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배포하는 자동화 실천법)와 같은 활동은 하루 수백 번 새로운 기능이 배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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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배포하는 것은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수시로 높이는 일이다. 아이디어의 발상에서 구현, 배포까지의 속도가 바로 경쟁력인 시장에서는 서비스나 상품의 변경 필요성을 느낀 후 이를 실제 반영할 때까지의 기간이 짧을수록 UX(User Experience, 고객 경험)를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체질이 개선되면,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평균 회복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앞으로 기업의 경쟁우위 확보는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제품과 기능을 계속 출시해 시장에서 소비자와의 관련성을 잃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격변의 시대에 소비자에게서 잊히지 않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할 때 기업문화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데브옵스(DevOps, 개발과 운영을 소프트웨어로 통합해 자동화·고도화하는 실천법) 등 백엔드(Back end, 노출된 플랫폼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용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노드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같은 개발 영역) ICT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기업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래전에 성공한 기업일수록 변혁을 가로막는 장벽이 많다. 관료주의적인 조직문화, 조직간의 벽,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지부동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러한 관성은 기존 고객과 수익모델을 지키려는 애사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리더가 모범을 보이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수요를 예측해 생산과 물류를 미세 조정하고 최적화하자’는 구호는 말은 쉽다.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데이터와 사람에 투자하는 것, 그리고 이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방법을 점진적으로, 연속적으로, 그리고 기민하게 실천하는 것뿐이다.

‘가심비의 시대다’ 소비자에게 다가갈 기업의 가치를 고민하라

이처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주체 역시 결국은 여전히 사람이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충만할 때 구성원의 생산성은 올라간다. 마찬가지 심리는 기업 외부와도 상호 작용한다. 소비자는 응원하고 싶은, 닮고 싶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구매한다. 이러한 감정적, 정서적 가치는 기업 내부자의 비전만으로는 완성되기 힘들다.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가치가 엿보일 때 소비자는 그 기업에 매료된다.

이제 기업 내 인재만이 아니라 소비자까지 아우르는 시장 참여자 전체의 마음을 더불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누구나 아이디어만으로도 어필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도 전자 상거래에서 크라우드 펀딩 자금 조달까지 스스로 해낼 수 있다. 개인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는 의미다. 이제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의 최종 목적지일 뿐만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채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편의성 덕에 소비자는 기업이 선보일 수 있는 가치에 중간자를 배제한 채 직접 연결될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D2C(Direct to Consumer, 제조업자가 최종소비자와 바로 거래하는 일)는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이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유니크(Unique)한 가치가 있다면 소비자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다. ‘해리스(Harry’s)-면도기’, ‘캐스퍼(Casper)-매트리스’, ‘와비파커(Warby Parker)-안경’ 처럼 많은 기업이 다양한 니치 상품(Niche Product, 일반 상품군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연령, 성별, 직업별 따위로 세밀하게 구분해 특화된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개발하여 만들어 낸 상품)으로 팬을 확보해 직접 유통하고 있고, 연예인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상품화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여기에 중간 유통 채널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처럼 뭐든 직접 해내려는 디지털의 습성은 기업에게 ‘브랜드 퍼포스(Brand Purpose,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그 브랜드의 목적을 공유하는 마케팅 활동)’를 모두 함께 고민하라고 압박한다. 현재 시장에 부족한 어떤 새로운 가치관의 제안이나 사회에 만연한 편견이나 속박에 대한 대안 등 우리 기업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결사의 마음을 담아 가치의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와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소비자를 팬으로 만들 때 기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포함한 현대의 경영 전략이 원하는 궁극적인 비약(飛躍)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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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 RE:3와 RE 엔진에 대한 소고_게임과 기업을 동시에 살리는 ‘이터레이션’ /iteration-that-saves/ /iteration-that-saves/#respond Mon, 27 Apr 2020 20:00:00 +0000 http://localhost:8080/iteration-that-saves/ 레지던트이블.jpg

▲ 바이오하자드 RE:3 북미 버전 게임 포스터(왼쪽)와 레지던트이블 영화 포스터(오른쪽)(사진제공 : 게임피아, 네이버 영화)

최근 게임 화제작 중에는 유독 리메이크나 속편이 많다. 일본 게임개발사 캡콤이 지난 4월 3일 출시한 ‘바이오하자드 RE:3’도 그중 하나다. 바이오하자드 RE:3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레지던트 이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캡콤의 대표 프랜차이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중 ‘바이오하자드 3’를 리메이크한 작품. 특히 개발 과정에 ‘RE 엔진’이 활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출시 전부터 게임 팬 사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RE 엔진은 바이오하자드 7부터 적용돼 지난해 GOTY(Game of the year)를 휩쓴 바이오하자드 RE:2로 이름을 널리 알린 캡콤의 자체 게임 개발 엔진. 후속작인 바이오하자드 RE:3 역시 RE 엔진의 특징인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과 디테일한 인물 표현으로 20년 전의 원작 바이오하자드 3와는 또 다른 질감의 공포와 흥분의 연속을 보여준다.


특히 배우의 얼굴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등장인물들의 외모와 더욱더 기괴하고 징그럽게 바뀐 생체 병기(Bio Organic Weapon)로 몰입감을 높였고,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영화 같은 스토리 영상 연출 역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스케일도 커졌다. 실내가 주전장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라쿤 시티 곳곳을 배경으로 사투가 벌어진다. 조작 방식을 개선하고 특히 전작의 회피 시스템을 계승한 ‘긴급회피’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액션 게임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소 분량이 짧아 가성비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는 바이오하자드 7 이후 다시 돌아온 캡콤 전성기를 이어가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바이오하자드 RE:3로 엿본 캡콤의 저력 : 제2의 전성기 연 ‘RE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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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캡콤의 대표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인게임 화면(사진제공 : 게임피아)

캡콤은 ‘1942’, ‘스트리트 파이터’ 등 고전 게임에서부터 ‘바이오하자드’나 ‘몬스터헌터’ 등 대작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히트작을 배출해온 대표적인 게임 명가다. 캡콤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지에 따라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게임 팬 입장에서는 일본 게임 업계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 한동안 명맥만 이어오던 캡콤이 다시 화려하게 부활을 알린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

돌이켜 볼 때 일본 게임의 부진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좋았던 시절의 성공에 지나치게 탐닉해, 성의 없고 안이한 자기 복제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세계관의 확장 없이 그저 타성에 젖은 속편으로 우려먹으려 했다.

또 하나는 자국 콘솔 플랫폼이나 아케이드를 우선시한 나머지, 게임 트렌드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것. 지나치게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PS)에 치중하고, XBox와 PC와 같은 플랫폼을 등한시했다.

달리 말하면 이 두 실수를 만회해, 속편의 기대치에 맞는 품질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효과적으로 뽑아내면 반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캡콤이 다시 전성기를 찾은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리메이크를 통해 인기 프랜차이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이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 것. 특히 핵심인 ‘속편의 기대치에 맞는 품질’을 구현해준 일등 공신이 바로 캡콤 부활의 Key로 꼽히는 ‘RE 엔진’이다.

RE 엔진에 담긴 캡콤의 ‘성공방정식’ : 상대가 가지지 못한 기술로 공략하면 승리한다

현대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 엔진’을 쓰고 있다. 고해상도 그래픽과 사운드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쉽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개발 환경을 말한다. 게임 엔진이 필요한 이유는 최종적 품질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물론, 한번 만들어서 다양한 플랫폼용 코드를 생성하는 일까지 엔진이 맡고 있기 때문. 때로는 게임 엔진이 게임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채택한 엔진의 종류는 게임의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게임은 유니티와 언리얼이라는 양대 게임 엔진을 가져다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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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엔진 공식 로고(사진제공 : 게임피아)

독자적 엔진으로 게임의 퀄리티를 차별화한 사례도 없지 않다. 밸브의 소스 2 엔진, 데스 스트렌딩의 데시마 엔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 리스트엔 캡콤의 RE 엔진도 빠질 수 없다. RE 엔진은 바이오하자드 7과 병행해 2014년부터 개발된 독자적인 엔진으로 현재 엔진 개발에만 50명 규모가 투입되고 있다.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일은 ‘문제를 스스로 풀겠다’는 용기와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락실 게임을 만들던 시절 비슷한 기판으로는 다른 회사와 비슷한 게임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달은 캡콤은 일본 전자기기 제조업체 리코(RICOH)에 칩 개발을 의뢰해 독자적 기판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MT프레임워크라는 자체 개발 엔진을 개발할 정도로 게임을 스스로 만들어 보려는 기개가 있었다.

캡콤은 MT프레임워크를 개발한 이후 15년간 잘 활용해왔다. 하지만 같은 엔진을 오랫동안 쓰다 보니 나중에는 각각의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엔진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공통 엔진으로서 MT프레임워크의 위상은 무너졌다. 이에 지친 캡콤은 MT프레임워크를 포기하고 월드 엔진이란 별도 엔진으로 계승해, ‘몬스터 헌터’라는 특정 대작을 만드는 게임 엔진으로만 한정하기에 이른다. 대신 ‘AAA 타이틀(대작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 영화의 블록버스터에 해당)을 위한 범용 엔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RE 엔진이었다.

RE 엔진이 남긴 교훈 하나 : 쉽고 유연한 체계를 갖춰라

캡콤은 엔진 개발 단계에서부터 RE 엔진을 쉽고 유연한 개발 툴로 구현하는 데 주력해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이를 통해 경쟁사 대비 적은 자원으로 AAA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게 됐고, 변화하는 게임 개발 트렌드에도 한 발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캡콤은 우선 게임 로직(logic)으로 C++(대규모 응용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 보다 쉽고 체계적인 C#(C++에서 파생된 프로그래밍 언어)을 선택했다. 또한, 캡콤은 C++보다 속도가 느린 C#의 구조적 한계를 회피하기 위해 독자적 가상머신 RE 엔진을 만들었고, 그 결과 C#으로도 C++로 짠 것 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또한, 변경한 코드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개발은 PC에서, 실행은 콘솔에서 바로 해볼 수 있는 개발 툴(Tool)을 구현했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 나중에는 PC에서 원격으로 제어해 콘솔에서 바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 툴도 완성했다.

이와 함께 캡콤은 RE 엔진의 각 기능을 조각내 조립 가능한 모듈로 구성했다. 하나의 툴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일체형 엔진이 아니라, 기능별로 엔진을 구분해 이를 선택해 조합하도록 한 것. 이처럼 모듈화할 경우, 필요에 따라 널리 쓰이는 외부 부품을 더할 수 있어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사양 변경도 모듈 분리로 해결할 수 있어 하위 호환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엔진의 사양이 완전히 바뀌어도 예전 기능을 모듈로 남겨놓을 수 있기 때문.

이처럼 코어를 분리해 내면 그 핵심 엔진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는 전사적인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각 게임의 유지보수도 엔진만 치환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게임들을 테스트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게임 개발자도 코드, 즉 게임 로직을 짜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한 번 짜놓은 코드는 세월과 함께 새롭게 개선된 RE 엔진에 의해 최신 기술로 최적화되고 마이너 업그레이드돼, 추가적인 작업이 소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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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엔진이 남긴 교훈 둘 : 빠른 이터레이션 속도를 구현하라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 프레임워크는 차별점이 있어야 자리를 잡는다. 개발자의 생산성을 높이든 유저의 사용성을 높이든,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한다. 이는 게임의 문법으로 이야기하자면 각각 생산성과 표현력이라는 과제인데, 캡콤은 이 중에서도 개발 퍼포먼스가 체험의 퍼포먼스도 만든다고 생각했다. 생산성이 좋다면 다양한 표현을 편하게 테스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캡콤은 게임의 규모가 양과 질에서 비대해진 실사형 게임을 간이 게임 만들듯이 신속하게 점진적으로 반복해 개발한다면, 즉 ‘이터레이션(iteration, 점진적 반복)’이 가능해지면, 도출되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그때 컴파일(개발용 언어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일반 컴퓨터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돼, 개발 단계에서 수십만 줄의 코드, 십수만 개의 애셋(게임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요소)을 지닌 대작도 10초 미만으로 풀빌드(Full-build)할 수 있는 RE 엔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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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레이션의 속도는 곧 경영의 속도다.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은 업무 환경을 갖추면 변화에 대한 심리적 허들도 낮아진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디테일한 표현력, 생동감 있는 플레이 모두 부담 없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발 환경에서 나온다.

멀리 보고 게임 엔진과 같은 공통 기반을 자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한 캡콤의 부상은 많은 콘텐츠 기업에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블리자드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이 이렇게 힘이 빠져 버리게 될 줄 몰랐듯이, 게임의 이야기란 그 프로그램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던 체제와 문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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