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 위원 – SK hynix Newsroom 'SK하이닉스 뉴스룸'은 SK하이닉스의 다양한 소식과 반도체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전달합니다 Fri, 14 Feb 2025 00:59:17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7.1 https://skhynix-prd-data.s3.ap-northeast-2.amazonaws.com/wp-content/uploads/2024/12/ico_favi-150x150.png 김재필 위원 – SK hynix Newsroom 32 32 [미래를 바꾸는 빅테크 5편 – 완결]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현실을 바꾸는 도구가 되다 (5/5) /big-tech-5-metaverse/ /big-tech-5-metaverse/#respond Thu, 14 Sep 2023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big-tech-5-metaverse/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 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2021년에 등장해 주목을 받았던 메타버스는 챗GPT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이슈에 밀려 현재는 다소 잠잠한 상태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거품이 사라졌고, 기술과 서비스 품질을 바탕으로 업계에서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애플은 올해 6월 혼합현실(MR) 헤드셋 신제품 ‘비전 프로’를 선보여 메타버스 부흥의 신호탄을 던졌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이 현재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타버스, AI와의 결합으로 새로운 길을 찾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접두사 ‘메타(Meta)’와 세계나 우주를 의미하는 ‘버스(Verse)’의 합성어로,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하였다. 국내 베스트셀러인 김상균 교수의 저서 ‘메타버스’에서는 메타버스를 새로운 세계, 디지털 지구로 설명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으로, 사람들이 공유 공간에서 디지털 객체와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새로운 세계를 의미한다.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의 대표적인 예로는 3D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사용자들과 채팅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SK텔레콤의 ‘이프랜드’와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제트의 ‘제페토’가 있다. 기업들은 이런 플랫폼 안에서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등 현실 세계의 경험을 가상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또 온라인 게임인 ‘포트나이트’에서는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이나 BTS와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실제와 같은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동물의 숲’도 자신의 섬을 꾸미고 다른 유저들의 섬을 방문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의 아바타 (출처: 이프랜드)

▲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의 아바타 (출처: 이프랜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로 바꿀 정도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상당히 높았지만 그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술과 인프라 수준은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비대면 트렌드가 약해진 것도 상당한 타격이 됐다. 메타의 올해 2분기 리얼리티 랩스* 사업 부문 매출도 2억 7,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9%나 감소했고 손실은 40억 달러로 23%나 늘어났다. 사명을 메타로 바꾼 것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 리얼리티 랩스: 메타의 메타버스 개발 사업부. 2014년에 메타가 VR기기 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됐고, 2020년에 별도 사업부로 분리됐다.

메타버스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메타버스 트렌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긴 호흡을 고르며 새로운 진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는 AI와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21년 12월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메타버시티’는 국내 60여 개 전문대학이 참여하여 만든 메타버스 공유 대학이다. 현재 25만여 명의 대학생이 강의실과 캠퍼스로 활용하고 있는데, 최근 생성형 AI와 개인화 3D 공간 등 최신 기술로 업그레이드한 ‘메타버시티 2.0’ 버전이 나왔다. 이용자들은 아바타 위에 활성화된 AI 채터(Chatter, 챗GPT 기반)를 대화 상대와 학습 서포터로 활용할 수 있다. 강의실은 AI로 생성한 360도 이미지를 배경으로 설정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원하는 장소를 메타버스 강의실로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이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는 메타버스가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높여준다.

메타버시티 내에 구현된 학교 (출처: 메타버시티)▲ 메타버시티 내에 구현된 학교 (출처: 메타버시티)

NFT 마켓플레이스 가디언링크의 COO 카메쉬와란 엘란고반(Kameshwaran Elangovan)은 “AI가 메타버스 사용자들의 상호작용을 학습함으로써 더 나은 고객 경험을 가능하게 해 메타버스에 기여할 것”이라고 언론에서 강조했다. 또 웹 3.0 통합 플랫폼 릴스타의 공동 설립자인 나브딥 샤르마(Navdeep Sharma) 역시 “AI는 고급 알고리즘과 머신 러닝을 사용해 메타버스를 개인화하고 개선해 향상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비즈니스에서 AI와 메타버스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리서치 플랫폼 테크 마켓 리포트(Tech Market Report)는 메타버스 시장에서의 글로벌 생성형 AI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31.5%의 연평균 성장률을 전망했고, 2023년 시장 규모는 약 4억 2,89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메타버스와 생성형 AI의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임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재현하기 어려운 위험한 현장을 메타버스로 구현

이전의 메타버스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주로 활용되었지만, 이제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 등 일하는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은 유해화학물질 누출에 대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 국내 메타버스 기업 ‘스코넥’은 세계 최초로 ‘대공간 기반 화학 사고 누출 대응 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안전 업무 종사자들은 의무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사고를 가상으로 구현해 대응 훈련까지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코넥의 시뮬레이션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사이렌과 함께 비상 안내 방송이 울리면 즉시 방호복을 착용하고 출동해, 현장에서 염산 누출을 확인한 뒤 기계실에서 장비를 조작해 누출을 막아야 한다. 이 훈련은 대형 공장이 아닌 49m²의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 덕에 자유롭게 이동하며 현실감 있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국가 재난대응 훈련에 증강현실 기술이 쓰인 사례도 있다. 2019년 울산광역시는 한빛소프트가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유해화학물질 누출 대비 훈련에 사용했다. 울산에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많아 자칫 사고가 터지면 국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스코넥의 훈련이 현장 실무자 대상이라면, 한빛소프트의 훈련은 행정직 공무원이 대상이다.

참여자들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재난 대응 상황을 마주하고 지자체 상황실, 재난 현장 본부 등 주어진 역할에 맞춰 게임처럼 미션을 수행한다. 훈련 참여자들이 사고에 대응하면서 교통 통제, 주민 대피 등 내리는 판단에 따라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한다. 만약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면 사상자 수와 피해액이 늘어난다. 현장 상황은 독립형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디바이스를 통해 지휘부에 회의 안건으로 공유되고, 이를 통해 이동 중에도 홀로렌즈(HoloLens,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한 증강현실 기기)로 상황을 보고 받고 지시할 수 있다.

또 화학 사고 훈련만큼 위험하고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현장이 바로 화재 사고다. 스코넥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공동으로 가상 소방 훈련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최대 10명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으며, 실제 화재 진압을 하듯이 열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열감수트, 물 대신 바람을 뿜는 관창 등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훈련한다. 또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상 상황도 구현했다. 백드래프트* 및 플래시오버* 등 소방관에게 치명적인 특수 상황을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로 만들어 현장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러한 훈련들은 실전 같은 연습과 종료 후 상세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참가자들의 역량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백드래프트(Backdraft):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 갑자기 다량의 산소가 공급될 때 폭발하는 현상
* 플래시오버(Flashover): 일정 공간에 축적된 다량의 가연성 가스가 발화점을 넘어서며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

VR(가상현실)로 구현된 소방 훈련 모습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VR(가상현실)로 구현된 소방 훈련 모습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또한 메타버스 훈련은 훈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반복적인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메타버스 훈련은 산업 재해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 방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가상 · 증강현실을 활용한 교육 · 훈련 분야 용도 분석’ 보고서(2020년 12월)에 따르면, XR 교육 · 훈련은 현장의 위험도가 높을수록 비용 절감 효과가 크며 소방관 훈련, 화학 사고 대응, 경찰 테러 훈련 등 현실 체험이 불가하거나 상당한 준비 기간이 소요되는 훈련에서 활용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오프라인 공간의 한계를 가상공간이 보완, 대체하는 ‘실용적 메타버스’는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산업과 재해 현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만 이용되어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던 메타버스 서비스가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으로 재난재해 및 사회문제에 대비

메타버스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은 현실 공간과 똑같은 쌍둥이 가상공간, 즉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은 200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 박사가 산업환경에서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이다.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너럴 일렉트릭(GE) 등의 기업에서 적용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디지털 트윈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컴퓨터로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여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다수의 군중이 밀집된 상황에서 사고 대응력을 높이는 ‘인파 관리 시스템’이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기 좋은 예다. 현재의 인파 관리 시스템은 핸드폰 위치정보(CPS, Cell Positioning System)나 지능형 CCTV · 드론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다중 밀집도를 분석하는 방식인데,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면 가상 공간에서 대규모 군중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보다 빠른 예방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다수의 군중이 밀집한 상황에서 사람이나 차량 등 다양한 동적 객체의 집단행동과 현상을 해석하여 가상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간대별 추적, 연령과 성별 분석 등 다양한 환경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돌발 상황에 실시간 대응은 물론, 이후 상황 전개까지 예측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기반의 인파 관리 시스템은 보행자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대규모 시설물에서도 화재나 사고 발생 시 대피 경로를 미리 파악하여 인파를 빠르게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여 다양한 재난과 재해에 사전 대비하고 있다. 2015년부터 3년간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Virtual Singapore Project)’는 실제 도시의 도로, 건물, 가로수 등 모든 구조물에 아이디를 부여하여 상세한 정보를 축적했다. 이를 통해 AI,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 계획, 교통,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을 위해 가상으로 구현된 싱가포르 시내(출처: Singapore Land Authority)

▲ 디지털 트윈을 위해 가상으로 구현된 싱가포르 시내 (출처: Singapore Land Authority)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 도우미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공동 시설에서 유독 가스 유출 사태에 대비해,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에서는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스가 유출되는 방향과 범위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한 후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경로를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속적인 데이터 업데이트를 통해 버추얼 싱가포르를 스마트 국가 건설의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스마트시티 및 부동산, 운송, 물류, 의료, 교육, 안전 및 보안 분야에 디지털 트윈과 AI를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국내 연간 사회재난사고 건수(도로교통사고, 자연재해 포함, 행정안전부 출처)는 약 30만 건에 이른다. 기반 시설의 노후화 및 이상기후로 인해 언제 어디서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사고가 발생한 후 빠른 조치도 중요하지만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안전 관리 역시 중요하다. 버추얼 싱가포르 사례와 같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사고 발생 위험 지역에 대한 실시간 관제 · 예측이 가능하다면 조기 대응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메타버스 기술로 안전 사회가 구현된다면 사고 발생에 따른 인적, 경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불안도 낮아져 경제 · 사회적 편익 또한 높아질 것이다.

메타버스의 희망을 보여준 애플의 비전 프로

2023년 6월 5일, 애플은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세계개발자회의) 2023’에서 애플워치 이후 약 9년 만에 신제품을 발표했다. 팀 쿡은 키노트 발표 마지막에 ‘One more thing(하나 더)…’이라 말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소문과 추측 속에 있었던 증강현실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를 선보였다.

비전 프로는 유리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헤드셋으로, 듀얼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4K 이상의 해상도를 제공한다. 시선 추적, 손 추적, 음성 인식 등의 기술로 조작할 수 있으며, 별도의 컨트롤러가 필요 없다. 비전 프로는 비전 OS(Vision OS)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있으며, 앱, 게임,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페이스타임(FaceTime) 통화를 하면 상대방 모습이 눈앞에 실물 크기로 보이고, 공간 음향을 적용해 마치 앞에서 음성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격은 3,499달러에 판매될 예정이며, 2024년에 북미 지역부터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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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가상의 화면을 보는 사용자와 컴퓨터 공간에 펼쳐진 화면 (출처: 애플)

비전 프로는 외관상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 기기처럼 보이지만, 팀 쿡은 메타버스나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공간 컴퓨팅’이었다. 공간을 활용해 무엇인가를 보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비전 프로의 목표는 넥스트(Next) 스마트폰이 되는 것이다.

“맥(Mac)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 시대를 연 것처럼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팀 쿡은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메타버스의 부활이 아닌 메타버스를 뛰어넘은 공간 개념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보던 화면을 비전 프로로 더 크게, 더 넓게, 더욱 현실감 있게 보는 것이다. 결국 비전 프로는 공간을 디스플레이로 쓰는 컴퓨터인 셈이다. 글을 쓰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사진과 동영상 편집, 음악 작업까지 비전 프로를 통해 더 넓은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 OTT로 보던 영화도 가상공간의 극장에서 볼 수 있다.

사실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용어나 개념이 아니다.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구소인 MIT 미디어 랩(Media Lab)의 연구원 사이먼 그린월드(Simon Greenwold)가 석사 논문 ‘공간 컴퓨팅’에서 처음 꺼낸 용어다. 그는 논문에서 “공간 컴퓨팅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하였고, “이를 위해 기계가 실제 사물과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공간 컴퓨팅”이라고 설명했다. 즉, 공간 컴퓨팅은 주변 사물과 공간 정보 등을 바탕으로 기계와 인간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과 시스템을 뜻한다. 현실 세계의 공간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고 그 위에 디지털 세계를 덧입힐 수 있는 기술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메타버스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인 것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도 애플의 비전 프로 발표에 다음과 같이 반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애플이 메타버스와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지,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성공 가능성을 낙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전 프로 이전에도 여러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기기는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가 있었고 메타가 출시한 VR 기기 ‘메타퀘스트3(Metaquest3)’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애플의 비전 프로 역시 높은 가격과 배터리 문제 등 극복해야 할 허들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전 프로가 다양한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과 생태계 조성의 시발점이 되어 식어버린 메타버스 시장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서 구동되는 앱을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여러 프레임워크*와 개발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비전 OS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를 배포해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용 앱을 새로 개발하고, 기존의 앱을 비전 프로용으로 변환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또한 애플은 런던, 뮌헨, 상하이 등 주요 국제 도시에 개발자 랩을 마련해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 하드웨어에서 앱을 테스트하고 애플 엔지니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습 경험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개발자에게 유리한 환경과 비전 프로를 통해 좋은 콘텐츠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이제까지 쓰던 앱들이 가상현실로 확장된다면 그만큼 메타버스 시장도 커질 것이다.

* 프레임워크(Framework): 앱, 웹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요소와 매뉴얼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지금의 스마트폰 세상은 스마트폰이란 하드웨어뿐 아니라 앱이라는 다양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가 만든 것이다. 불과 15년 전,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스마트폰 세상이라는 빅뱅을 일으켰듯이, 이번에도 비전 프로를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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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빅테크 4편] AI(인공지능)와 데이터 개인화에 최적화된 인터넷 세상, 웹 3.0이 온다 (4/5) /big-tech-4-web3/ /big-tech-4-web3/#respond Tue, 08 Aug 2023 17:00:00 +0000 http://localhost:8080/big-tech-4-web3/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 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스마트폰이 일상의 도구가 된 지금, 이제 인류는 웹(Web)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웹이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용자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웹은 1990년 보급돼 웹 1.0과 2.0을 거쳐 3.0으로 발전했다.

아직 웹 3.0이 낯설 수 있지만,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도 작년 12월에 웹 3.0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스타벅스 오디세이’를 베타 출시했고, 올해 3월에 이 서비스에서 발행한 최초 한정판 NFT* 2,000장이 18분 만에 완판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화제가 된 웹 3.0이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아보자.

*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권리 증명서. 원본과 복사본을 구별할 수 없어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디지털 자산(이미지, 노래, 영상, 캐릭터, 문서 등)의 원작자,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코인과의 차이점은 코인은 코인끼리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만, NFT는 땅 문서, 집 문서처럼 개별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서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방향 소통 웹 1.0에서 양방향 소통 웹 2.0까지

웹은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개발했다. 웹의 최초 목적은 연구자들의 정보 교환이었으나 인터넷 익스플로러 같은 웹브라우저와 야후 같은 검색 서비스가 탄생하며 빠르게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대략 1991년부터 2003년까지를 웹 1.0으로 구분한다. 웹 1.0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정보를 읽고 소비하는 것만 가능했기 때문에 ‘읽기 전용(Read Only)’이라는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시기 사용자들의 웹 활동은 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등 정보를 구하는 행태가 주류였다.

웹 1.0은 일방향 소통만 가능하고 주도하는 조직이 기업이었다면, 웹 2.0부터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이끌어나가는 조직이 플랫폼으로 바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자들은 정보의 소비자에서 위키피디아, 블로그 같은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페이스북 같은 SNS의 출현으로 ‘좋아요’, 댓글 같은 상호작용도 더욱 활발해졌다. 공급자 위주의 웹 1.0과 비교하면 웹 2.0은 사용자 중심으로 진보해 정보의 양방향 교류가 가능해진 것이다. 웹 2.0은 ‘참여, 공유, 개방’을 표방하며 인터넷을 통해 풍부한 정보가 생성되고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웹 2.0은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고 기록되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기업의 중앙 서버에 모이게 되고, 이들이 데이터의 통제권을 지니게 되면서 개인정보 침해, 시장 독점, 정보 손실 가능성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웹의 범위가 넓어지고 유통되는 데이터의 양이 방대해지면서 웹 2.0을 둘러싼 문제의식은 점점 커졌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드러난 중앙집중형 웹 2.0 플랫폼의 한계

먼저 웹 3.0을 이해하기 전 웹 2.0의 문제가 가시화된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2022년 10월 중순, 판교의 한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를 위해 센터 전체 전원이 차단되면서 3만 2,000 대의 서버 기능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비롯해 많은 앱 서비스에 오류가 발생했다. 이날의 셧다운 사태는 웹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중앙집중화된 플랫폼이 멈추면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데이터센터 사고는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2011년 4월, 아마존의 미국 동부 데이터센터에 정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IT 서비스에 대대적인 장애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 대형 소셜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과 언론사 뉴욕타임스 등 유명 기업들이 아마존의 데이터센터를 사용했는데, 이 정전으로 이들 기업의 사이트는 최소 하루 이상 마비됐고 일부 사이트는 복구하는 데 4일 가까이 걸렸다.

이외에도 비슷한 사고가 여럿이다. 2022년 6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력 시스템 문제로 버지니아 데이터센터 운영을 중단하는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8월에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냉각 시스템이 고장 나 런던 지역을 커버하는 구글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긴 바 있다.

때문에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재난재해 대비와 데이터센터 관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사고나 해킹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서버가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들로부터 더 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요구하면서 늘어나는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점점 더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 곳에서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이를 완전히 예방할 방법이 없고 증가하는 데이터 양에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웹 3.0’의 등장

중앙집중화된 플랫폼 기업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웹 3.0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웹 3.0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 기업들의 문제를 제도나 정책이 아닌 ‘기술적’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나타난 새로운 인터넷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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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집중화된 웹 구조와 탈중앙화된 웹 구조

웹 3.0의 핵심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탈중앙화 · 분산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기업의 서버에 집중되어 있던 방대한 데이터를 웹 사용자들에게 분산시켜 ‘소유’하도록 해, 본래 웹의 취지였던 ‘웹의 권리는 이용 주체인 사용자에게 있다’는 철학을 실현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원장(장부)을 분산해 데이터는 완벽히 암호화하고,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명확히 증명할 수 있어 ‘데이터 소유’가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사용자가 거대 플랫폼 기업을 벗어나 직접 만든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될 수 있다.

웹 2.0은 양방향 소통으로 웹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으나, 사용자들이 생산하는 데이터는 계속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이 플랫폼 기업에만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데이터의 권리는 원래 주인인 사용자가 가져야 한다는 오랜 철학이 마침내 블록체인 기술을 만나 웹 3.0의 시대를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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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의 단계별 구분(출처: 글로벌 가상자산 투자사 그레이스케일). 위 구분은 기관이나 학계에 의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나, 웹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큰 변화가 있던 시기와 업계의 기준을 바탕으로 나누었다.

웹 3.0의 개념을 살펴보면 공통되는 키워드가 있는데, 바로 ‘탈중앙화(분산)’, ‘소유’, ‘지능형 웹’이다. ‘소유’는 콘텐츠, 데이터(개인정보 및 기록), 인프라 등을 포함한 웹 전반에 대한 권리를 플랫폼 기업이 아닌 사용자가 갖는다는 의미이며, ‘지능형 웹’이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 웹의 정보를 이해하고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웹을 일컫는다. 세 키워드로 웹 3.0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탈중앙화된 차세대 지능형 웹’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의 웹 3.0의 핵심: 보상(Rewards)

개발자 입장에서 바라본 웹 3.0은 블록체인을 통해 데이터베이스가 분산화되고 탈중앙화가 잘 이루어졌는지가 핵심 사항이다. 그러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웹 서비스가 웹 2.0인지 웹 3.0인지 큰 관심이 없다. 사용자가 웹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기술(Technology)’이 아닌 ‘가치(Value)’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관점에서 웹 3.0과 웹 2.0을 구분 짓는 포인트는 블록체인이나 탈중앙화 같은 기술적 개념보다는 ‘웹 2.0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가’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웹 3.0은 ‘네트워크 혹은 생태계 참여, 소유에 따른 보상(Rewards)이 주어지는 웹’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사용자가 웹 3.0에서 바라는 가치는 ‘웹 이용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다. ‘유튜브 광고는 내가 보는데 왜 돈은 구글이 다 벌어갈까?’, ‘메타에 글을 올리고 활동은 내가 하는데 돈은 왜 메타가 벌지?’라고 많은 사용자들은 의문을 품는다.

웹 2.0에서는 개인의 데이터를 이용해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웹 3.0에서는 개인이 웹 생태계에 참여함으로써 데이터의 저장, 사용 및 소유권을 가져오게 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여기서 제공되는 보상은 웹 3.0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과의 거래와 데이터에 신뢰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신뢰를 보증하는 중앙 기관과 플랫폼 없이도 모든 구성원이 함께 데이터를 검증하고 저장하므로 누군가가 임의로 조작하기가 어렵다. 또한 블록체인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참여자들의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참여자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해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대가로 시스템 내에서 생성되는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받는다. 이 보상을 통해 웹 3.0의 핵심 가치인 탈중앙화가 가능해지며, 블록체인 구조를 유지하는 대가로 사용자는 토큰을 받게 된다.

웹 3.0은 웹 이용에 따른 보상과 협력을 동시에 이끌어낸 새로운 경제 모델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해 사용자가 얻는 보상은 블록체인 구조를 유지하는 힘이 되면서, 사용자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장치가 되었다.

개인 중심의 웹 환경으로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커피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별’이나 ‘프리퀀시’와 같은 일종의 적립 포인트를 제공하는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스타벅스는 리워드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운영에 힘입어, 웹 3.0의 요소를 도입해 ‘스타벅스 오디세이’라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고객이 스타벅스 오디세이에서 제시된 미션을 수행하면 ‘여행 스탬프(Journey Stamp)’라는 NFT(대체불가토큰)를 보상으로 지급받는다. 고객은 이 스탬프로 신메뉴 시음, 리저브 매장 특별 이벤트, 농장 견학 등 스타벅스가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스탬프를 타인에게 양도 ·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타벅스가 기존의 리워드 프로그램 외에 스타벅스 오디세이를 추가로 출시한 이유는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을 디지털 세계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3의 공간은 미국의 도시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의 저서 <정말 좋은 공간(The Great Good Place)>에 소개된 개념으로, 제1의 공간인 집과 제2의 공간인 직장과 구분되는 비공식적 공공장소로서 다른 사람들과 모여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스타벅스는 이제 온라인 세계로 제3의 공간을 확장해 디지털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기존 리워드 프로그램이 회원과 스타벅스 간의 관계 형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스타벅스 오디세이는 회원 간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중심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 오늘 설명하고자 하는 웹 3.0의 핵심 예시이다.

지금껏 NFT를 언급했지만, 사실 스타벅스는 고객들이 웹 3.0에 대해 알지 못해도 스타벅스 오디세이에서의 경험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당 서비스에서 NFT, 블록체인, 암호화폐 같은 어려운 용어를 배제하고 있다. 고객들을 새로운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온보딩(On Boarding)시키면서 신기술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디지털 자산에 대한 권리를 되돌려주는 스타벅스의 행보가 기대된다.

개인이 주인이 되는 웹 3.0

웹 3.0은 사용자에게 자율성과 개인 정보의 권리를 되돌려준다. 나아가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수익화할 수 있는 수단도 제공한다. 암호화폐 지갑의 DID*를 사용하면 개인정보를 기업 측 서버에 보관할 필요도 없고 해킹당할 위험도 적다. 웹 3.0에서는 결제나 거래 시스템을 개인이 직접 플랫폼에 구축하고 운영할 수도 있다.

* DID(Decentralized Identity, 탈중앙화 신원증명): 기업이나 중앙시스템에서 개인 정보를 보관하는 기존 방식 대신,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보관하고(개인 소유의 단말기 등에) 인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 신원증명 기술

웹 2.0의 중심이 기업이었다면 웹 3.0은 개인과 커뮤니티 중심으로 진행된다. 개인은 지금보다 익명화되고 보호되면서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영역 또한 더 커질 것이다. 웹 2.0 플랫폼에 종속되어 편리함을 추구할지, 다소 불편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지만 스스로 내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내가 주인이 되는 길을 택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다가올 웹 3.0 시대에서 먼저 기회를 잡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위해 스타벅스와 같은 기업들은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웹의 대전환기를 맞아 등장한 웹3.0을 외면하기엔 그 범위와 영향력이 너무도 넓고 크다.

FTX와 테라-루나 사태가 일깨워준 ‘신뢰’와 ‘책임’의 중요성

2022년 11월,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Future Exchange)*가 파산했다. 2019년 설립 후 3년 만에 시장 점유율 24%를 차지한 대형 거래소가 한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FTX를 만든 1992년생 CEO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코인 계의 워렌 버핏’으로 불리며 성공한 기업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허술한 재무관리와 돌려막기식 암호화폐 가격 높이기로 FTX의 가치는 순식간에 하락했다.

* FTX(Future Exchange): 미국의 유명 공대 MIT출신 샘 뱅크먼-프리드가 2019년 설립한 암호화폐 거래소로 앤티가 바부다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Cryptocurrency exchange)란 암호화폐와 화폐를 환전해 주는 거래소인데, 쉽게 설명해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달러 같은 화폐로 교환 가능한 곳이다.

더 놀라운 것은 CEO를 비롯한 임원진의 도덕적 해이였다. 임원진은 자금 사용과 관련해 단 한 번의 이사회도 열지 않았고, 회사 자금으로 바하마의 부동산을 구매하고, 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에서 돈을 빌린 후 갚지 않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FTX 파산 사태는 암호화폐 사장에 큰 영향을 미친 테라-루나 사태*가 터진 지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하여 더 큰 충격을 주었다.

* 테라-루나 사태: 2022년 5월, 암호화폐 테라와 자매 코인인 루나의 가치가 99% 폭락한 사건. 루나는 대형 거래소 업비트 기준으로 시가총액 4위에 해당하는 메이저 코인이라 업계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미국의 금융서비스사 셀시우스(Celsius), 헤지펀드사 쓰리애로우즈캐피탈(Three Arrows Capital)이 파산하는 등 전 세계의 코인 시장이 주춤했다.

탈중앙화된 웹 3.0에서는 책임질 조직도 개인도 정부도 없다. 웹 3.0은 커뮤니티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만약 모두의 신뢰가 깨지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그 신뢰를 깨려는 세력이 등장할 때 웹 3.0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 FTX와 테라-루나 사태는 견제 장치도, 보호 장치도 없이 그야말로 말뿐인 탈중앙화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그들이 만든 코인과 토큰은 회사와 투자자의 탐욕이 만든 거대한 허상이었고, 결국 신뢰가 무너지자 한순간도 방어하지 못하고 허약하게 붕괴됐다.

웹 3.0이 생태계를 구축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탈중앙화도 결국은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제대로 작동된다. 탈중앙화에만 연연해 신뢰를 저버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책임 소재가 분명한 웹 2.0에 머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신뢰와 보상을 가치로 한 창작자 중심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웹 3.0의 중요한 특징은 창작자 중심의 생태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 창작자 경제)란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수익을 만드는 산업을 의미한다. 크리에이터는 유튜버, 인플루언서, 가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 등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그동안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 플랫폼은 크리에이터들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플랫폼의 급성장으로 인해 주도권이 크리에이터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야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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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터와 팬은 강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웹 3.0 기반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창작자의 정당한 수익을 보장하고, 창작자와 소비자를 보다 밀접하게 연결해 준다. 크리에이터 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유대관계가 강하다. 또한 소셜 토큰(Social Token, 커뮤니티 토큰(Community Token)이라고도 함) 발행을 통해 팬, 회원, 구독자 등이 크리에이터를 지지하면서 생태계가 확장될 수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의 웹 3.0 도입은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웹 3.0으로 기존 사용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갖춘 크리에이터들이 늘어난다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웹 3.0 성장과 함께 더욱 굳건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웹 3.0이 불러오는 세 가지 미래 변화

요약하면 웹 3.0으로 인해 미래에는 ▲웹 구조 변화 ▲일하는 방식의 변화 ▲수익 활동의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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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3.0으로 인한 미래의 3가지 변화(출처: 도서 <웹 3.0 혁명이 온다>, 지은이 김재필)

웹3.0은 데이터가 소수의 조직에 집중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블록체인 기술로 분산될 것이며, 이에 따라 사용자에게 웹과 데이터의 소유권 부여와 보상이 가능해지면서 토큰과 코인으로 X2E* 서비스가 창출될 것이다.

* X2E(X to Earn, Something to Earn): 웹 3.0에서 X(Something)라는 활동을 통해 보상과 수익을 얻는 모든 방식을 의미한다.

또한 중앙집권형 조직 없이 구성원들이 함께 데이터를 검증하고 저장하는 블록체인의 형태에서 비롯한 ‘탈중앙 자율조직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이하 DAO)’가 확산되면서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DAO같은 의사결정 조직을 기업 경영에 적용해 보면, 주주들이 원격 · 익명으로 참여해 경영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의 혁신(블록체인), 서비스의 혁신(X2E), 조직의 혁신(DAO), 이 세 가지의 혁신이 한데 어우러져 웹 3.0이 완성된다. 어느 하나만의 혁신으로는 웹 3.0의 지향하는 바를 이루어 내기 어렵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데이터의 분산과 보상이라는 가치 제공, 그리고 탈중앙 자율 조직 DAO를 통해 웹 3.0의 핵심 이념인 ‘공생’과 ‘탈중앙화’가 구현된다.

웹에서 소유권을 인정받고, 경제활동을 하며,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유튜버라는 직업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는 숨 쉬듯 익숙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웹 3.0이 열어나갈 새로운 세상, 이상이 이루어지는 희망찬 미래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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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빅테크 3편] “자율주행, 지상보다 하늘이 더 기대된다” 도심항공교통, UAM을 만나다 (3/5) /big-tech-3-uam/ /big-tech-3-uam/#respond Tue, 18 Jul 2023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big-tech-3-uam/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최근 도로를 누비는 전기차가 부쩍 늘었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등록된 누적 전기차는 약 40만 대다. 내연기관에서 전기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이동 수단이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었고,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교통)이 등장하면서 이동 수단은 지상에서 하늘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기차를 비롯해 2025년 상용화 예정인 UAM은 현재 어디까지 발전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살펴보도록 하자.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된 전기차

사실 전기차는 디젤이나 가솔린을 쓰는 엔진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되었다. 1824년 헝가리의 발명가 아뇨스 제들리크(Ányos Jedlik)가 전기모터를 바퀴에 적용했던 것이 전기차의 시초다. 그 후 1832년에 영국의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이 최초의 전기 마차를 개발했고, 185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Gaston Planté)가 운송수단에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충전식 납축전지를 발명하면서 전기차의 동력원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884년 영국의 토마스 파커(Thomas Parker)가 축전지를 활용해 충전 가능한 전기차를 발명했고, 이것이 공식적인 세계 최초 전기차로 인정받았다. 또 1899년에는 벨기에의 자동차 드라이버 카밀 제나치(Camille Jenatzy)가 ‘La Jamais Contente(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라는 이름의 전기차를 개발해 처음으로 100km/h 가 넘는 속도로 달리기도 했다.

1900년대는 미국 도로 위의 자동차 중 1/3이 전기차일 정도로 대중화됐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냄새와 소음이 적었고, 크랭크를 돌려야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시동을 켜는 게 훨씬 편리했기 때문에 상류층 여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어 일명 ‘마담차’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1920년대 텍사스 원유 발견과 함께 가솔린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1913년 포드가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량생산 하면서 전기차는 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대기오염 문제가 대두되고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기차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기존 전지의 한계를 리튬이온 배터리로 극복하면서 전기차는 미래를 책임질 스마트 모빌리티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했다.

테슬라 대시보드

▲ 테슬라 차량의 운전석 대시보드 (출처 : 테슬라)

전기차의 대표 격인 테슬라의 운전석 대시보드를 살펴보면 기존 자동차와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테슬라 자동차에는 대시보드 중앙에 대형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가 있다. 운전자는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주행 정보,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고 오디오와 차량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자율주행은 물론 운전자의 행동을 학습하고 선호 사항을 파악해, 이에 맞춰 최적의 운전 환경을 제공한다.

전기차는 자동차 산업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모빌리티의 탄생을 촉진했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 주행 기술과 배터리 기술은 전기차와 함께 발전하면서 UAM과 자율주행 선박의 출현을 이끌었다.

갈 길이 먼 완전자율주행, 지상의 자동차 대신 하늘로 눈을 돌리다

전기차의 대중화로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GM은 2016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회사 크루즈를 인수했고, 스텔란티스 그룹은 2022년에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인 AI모티브를 인수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따르지 않아 좌초된 기업도 나오고 있다.

아르고AI는 2016년 설립된 자율주행 스타트업으로, 포드와 폭스바겐으로부터 36억 달러(한화 4조 7,484억 원)를 투자받았다. 기업 가치가 한때 9조 원에 달했던 아르고AI는 2022년 10월 말 문을 닫고 말았다. 5조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받았는데도 6년밖에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것이다. 자율주행 상용화는 지연되는데 막대한 비용만 기약 없이 들어가자, 포드와 폭스바겐은 결국 아르고AI를 포기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자율주행차 시장이 2035년까지 770억 달러(한화 101조 5,63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동시에 2035년까지 완전자율주행 실현을 위해서 450억 달러(한화 59조 3,640억 원) 이상의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율주행 시장이 커지는 만큼 막대한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율주행단계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단계를 레벨 0부터 5까지 총 6단계로 나눈다. 레벨 0은 ‘비자율주행’, 레벨 1은 ‘운전자 보조’ 단계다. 레벨 2는 ‘부분 자율주행’이다. 레벨 3은 ‘조건부 자율주행’으로 인공지능이 운전대를 조작하고 속도도 조절한다. 주변 환경도 파악한다. 고속도로 주행 같은 일부 상황에서는 차가 스스로 운행한다. 운전자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에선 운전대를 잡을 필요조차 없다. 레벨 4는 ‘고도 자율주행’ 단계로 비상 상황에서만 인간이 개입한다. 레벨 5는 ‘완전자율주행’이다. 모든 도로와 모든 환경에서 인공지능이 스스로 차를 통제한다.

자율주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는 레벨 4부터다. 그러나 현 시점 이 단계에 도달한 회사는 아직 아무도 없다. 레벨 3을 달성한 업체도 혼다와 메르세데스 벤츠 2개 사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 전문가 포럼(CSF)*에 따르면 레벨 4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려면 적어도 15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자율주행 테스트 완료를 위해 180억㎞에 달하는 주행 시험을 해야 하고, 자율주행차가 겪을 수 있는 10억 개의 시나리오에 대한 시험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 중국 전문가 포럼(CSF, China Specialist Forum) : 정부의 대 중국 정책 수립을 지원하고자 만들어진 포럼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레벨 4의 자율주행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다. 자율주행을 하던 GM의 크루즈 로봇택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 뒷부분과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는가 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테슬라 운전자가 정차된 911 소방 트럭을 들이받고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사고는 미국 내 테슬라 차량 36만 대 리콜이라는 조치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을 담당하는 인공지능이 현재의 복잡하고 다양한 도로교통 상황을 인간처럼 이해하면서 운전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능으로 운전하는 경우, 인공지능은 끼어들 때와 출구로 빠져나가야 할 때 등의 상황에서 인간처럼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고속도로에서 우측 출구로 빠져나가는 상황을 예로 들면, 인공지능은 충분한 공간이 확보됐을 때만 끼어들기 때문에 상당 시간 나가지 못하고 공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완전자율주행 기술은 지상의 차량에 탑재되어 상용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신 자율주행 기술은 복잡한 지상의 도로 대신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은 하늘길로 눈을 돌렸다. 바로 UAM이다.

복잡한 도로 대신 하늘로 다니는 UAM

현재 모빌리티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UAM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해 모빌리티 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UAM은 저소음, 친환경 동력 기반의 수직이착륙 교통수단과 이착륙 인프라를 포함하는 최첨단 교통 시스템이다. 플라잉카, 에어택시, 드론택시라고도 하며 도심 속 공중에서 운송하는 모빌리티다. UAM은 미국 NASA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뉴욕 및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메가시티 화로 교통 체증이 심화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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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을 나는 UAM 상상도

UAM은 기존 항공기에 비해 낮은 300~600미터 고도에서 비행하며, 소음 역시 63dB 이하로 낮아 소음 공해가 심각한 헬리콥터에 비해 도심 내에서 활용도가 높다. 낮은 소음 및 높은 안전성으로 인해 UAM이 이착륙하는 버티포트(Vertiport)를 도심 속 낮은 빌딩 옥상에 설치하기 좋다.

UAM은 크게 기체, 인프라 시스템 및 서비스로 구성된다. 기체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eVTOL(electric Vertical Take Off & Landing, 전기 수직이착륙기)로 만들어지며, eVTOL에 적합한 고밀도, 고출력 배터리 팩과 연료전지 시스템 등 동력원 개발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UAM은 eVTOL 기체가 양산되는 2025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상장된 eVTOL 기체 제작 기업은 Joby, Lilium, Archer, Blade, Ehang 등이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한화 시스템, 현대자동차 및 베셀에어로스페이스가 eVTOL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UAM에서 자율주행 기술은 필수적이다. 물론 자동차와 UAM에 적용되는 자율주행 기술이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알고리즘이나 절차 등은 유사하다. 육지와 하늘이라는 서로 다른 도메인에서 운용되지만, 둘 다 고도화된 센서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사용해 UAM은 자동으로 경로를 계획하고 충돌을 회피한다. 이를 통해 공중에서의 교통 혼잡을 줄이고, 여러 UAM 기기 사이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승객과 물류 운송을 최적화하여 공중 교통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운행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도시 교통 시스템에서는 자율주행 차량과 UAM이 통합되어 더 효율적인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이 승객을 픽업하여 UAM 이착륙장인 버티포트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승객이 드론 택시 등의 항공 수단을 이용하는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에어택시 타러 옥상으로 올라가요

uam,버티포트

▲ 옥상 위 에어택시 상상도

UAM에서 중요한 인프라는 버티포트다. UAM 기체들이 이착륙하고, 승객이 승·하차하는 버티포트는 도심 주요 교통요충지에 위치하는 신규 인프라 공간이 될 것이다. 버티포트는 기체 정비·유지 보수·충전 등 eVTOL 기체 운용의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도시당 버티포트는 30~300여 대의 기체가 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며 화물 운송용 드론을 포함하면 1,000여 대의 비행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운용 로드맵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수도권 중심의 버티포트를 설치,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여의도, 잠실 등에서 UAM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된다. 2030년이 되면 수도권 및 광역권 중심에 버티포트를 설치, UAM 운행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택시와 버스처럼 어디서든지 UAM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빌딩의 헬리포트는 개인 소유의 eVTOL 버티포트로, 초대형 빌딩의 옥상은 상업용 버티포트로 개발될 수도 있다. UAM이 상용화되면 이제 사람들은 자가용이나 지하철, 버스를 타러 지하나 1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UAM을 타러 옥상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향후 버티포트는 신규 교통 인프라의 역할뿐만 아니라 금융, 병원, 주택, 상점 등 주요 상업 시설과 연계될 것이다. 접근성과 편의성이 중요하므로 버티포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동산 개발 시너지 창출도 기대된다. 미래에는 역세권이 아닌 ‘U세권(UAM+역세권)’이 뜨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아처 버티포트

▲ 미국 플라잉 카 제조사 아처 에이비에이션(Archer Aviation)이 미국 전역에 짓고 있는 버티포트 (출처 : 아처 에이비에이션)

네옴시티, UAM으로 하늘길을 열다

2022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을 방문해 재계는 물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국빈급으로 대접하는 등 큰 화제가 되었다. ‘미스터 에브리씽(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가 방문한 이유는 2030년을 목표로 대규모 신도시 건설사업 ‘네옴시티(NEOM CITY)’를 건설하는 데 관련 기술을 가진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원유 중심의 사우디 경제를 미래형 제조업으로 전환하려는 ‘비전 2030’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국 기업을 최적의 파트너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에너지·방산·인프라건설 등 3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전략파트너십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사막에 건설될 신도시로, 규모(2만 6,500㎢)는 서울시의 44배에 달하며 총사업비는 약 5,000억 달러(한화 650조 원)에서 최대 1조 달러로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크게 주거지구(더 라인), 산업지구(옥사곤), 관광지구(트로제나)로 구성되는데, 1차 완공은 2025년, 최종 완공은 203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케일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이 도시를 ‘탄소제로’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태양광∙풍력∙그린수소(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수소) 등의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주거지구엔 아예 자동차가 다니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동 수단으로는 무엇을 쓰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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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옴시티의 주거지구, 더 라인 계획도 (출처 : 네옴시티)

900만 명이 살게 될 네옴시티의 주거지구, 더 라인(The Line)은 해안에서부터 사막까지 500m 건물이 170km 거리로 일직선으로 놓인 형태로 지어질 계획이다. 높이는 롯데월드타워(550m)에 맞먹고, 길이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수직 도시 설계 디자인은 자연보호와 인간 거주성 향상을 위한 모델로, 수직으로 도시를 쌓아 올려 개발 면적을 줄이고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 라인의 설계를 보면 땅 위에 차도가 없어 자동차가 아예 다닐 수가 없다. 대신 지하에 터널을 뚫어 고속철도가 최대 20분 만에 도시를 관통한다. 이를 위해 지하 터널을 먼저 파고 이후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구역별로는 사무실∙상점∙병원∙학교∙영화관∙경찰서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모든 곳을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있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세운 이동 수단이 바로 UAM으로, 하늘을 나는 에어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네옴시티는 UAM 기업인 독일의 볼로콥터(Volocopter)와 계약을 맺고 15대의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5대는 화물, 10대는 승객 수송에 활용할 예정이다. 네옴시티는 건설 단계부터 에어택시가 주거지구, 산업지구, 관광지구를 모두 오가며 이착륙할 수 있게 설계된다.

UAM이 상용화되려면 통신이 중요한데 네옴시티는 이를 위해 우주인터넷 기업인 영국의 원웹(Oneweb)과 2억 달러 규모의 합작투자 계약을 맺었다. 우주인터넷은 기지국을 지상에 설치할 필요 없이 쏘아 올린 위성에서 바로 신호를 받아서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로, 원웹은 이 분야의 선도주자다. 원웹은 네옴시티에서 와이파이와 5G 통신도 지원할 계획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미스터 에브리씽’의 말처럼 네옴시티가 현실화된다면 UAM, 전기차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은 엄청난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공간 혁명, 스마트 모빌리티가 구현하는 친환경 미래 도시

앞으로의 미래 도시에서 UAM은 이동 수단 그 이상의 역할이 기대된다. UAM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버티포트, 충전 시설, 관제소, 통신, 저궤도 위성 등의 제반 인프라 시설이 필수다.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기체 개발, 기술, 법과 제도, 사회적 합의 등의 뒷받침은 기본이다. UAM 상용화가 확산되면 공유, 리스, 렌탈, 보험, 그리고 자율차, 택시, 지하철 등 타 교통과 연결된 복합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5G와 6G 통신망, 수소 사회까지 도래하면 친환경 스마트 시티가 구축되고 패러다임 변화에 맞추어 기존 도로, 교통 시스템 및 도시 구조 등 도시 생태계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미래의 도심 도로는 자율주행 전용 차선과 내연기관 차선 등으로 구분되고 교통 상황에 따라 인공지능이 교통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자율주행차(전기차, 수소 전기차), 수소 버스 등 사람들은 친환경 차를 타고 UAM 버티포트로 이동해 환승하여 원하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버티포트 주변에는 핵심 상업, 업무지구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산업과 정보통신 기술이 융합된 모빌리티 혁명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흔해진 전기차와 인공지능 주행이 어색하지 않은 지금, 우리는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과거 바퀴의 발명이 단순히 이동 수단의 발전이 아니라 세상 전반을 변화시켰듯이, 스마트 모빌리티도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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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빅테크 2편]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진화하는 ‘로봇’ (2/5) /big-tech-2-robot/ /big-tech-2-robot/#respond Tue, 06 Jun 2023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big-tech-2-robot/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최근 식당을 방문하면 테이블 사이로 서빙 로봇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는 관람객의 짐을 대신 들고 따라다니거나 청소하는 로봇도 등장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순찰 로봇이 주·정차 단속, 화재 감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AI와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로봇은 서서히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 시절에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됐지만, 미래의 로봇은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있다. 파트너로 거듭나고 있는 로봇은 어디까지 발전했고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테슬라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2022년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팔로알토 본사에서 ‘2022 AI 데이’가 개최되었다. 이날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다. ‘범블C’라고 이름 붙여진 이 로봇은 뼈대와 전선이 노출돼 완성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스스로 걸어 나와 손을 들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춤추는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데모 영상에서 범블C가 무릎을 굽혀 상자를 들어 옮기거나, 손가락을 구부려 물뿌리개를 잡아 화분에 물을 주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들어 옮기는 영상을 공개했다. 마치 사람처럼 손으로 할 수 있는 세밀한 작업을 구현한 것이다.

▲ 테슬라가 ‘2022 AI 데이’에서 시연 중인 로봇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자사 전기차에 사용 중인 오토파일럿 기술을 적용했다. 로봇은 카메라와 기타 센서로 사물을 인식하고, 인식한 사물을 사람처럼 잡고, 현재 자신이 잡고 있는 물체와 주변 사물을 구분한다. 로봇에게 ‘화분에 물뿌리개로 물을 줘’라고 명령하면 책상 위에 놓인 물뿌리개를 인식해 들고, 다음에는 화분을 인식해 물을 주는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로봇의 성능이 아닌 일론 머스크가 내세운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전기차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로봇 대중화 시대를 연다

일론 머스크는 AI 데이에서 향후 3∼5년 내 휴머노이드 로봇을 수백만 대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내세운 가격이 ‘2만 달러’로, 이는 한화로 약 2,700만 원이다. 이는 현재 테슬라가 판매하는 전기차의 저가 모델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이다. 테슬라는 부품 공용화와 양산화를 통해 가격을 지금 로봇의 5분의 1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경찰견 모양 4족 보행 로봇 ‘스팟’의 판매 가격이 7만 4,500달러로, 한화 8,000만 원임을 감안한다면 머스크가 선언한 가격은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운 가격이다. 초기 타겟 시장이 공장 등 산업 현장이라고 봤을 때, 기업 입장에서 2만 달러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제시한 2만 달러라는 가격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봇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려면 자동차 생산 과정처럼 자동화 공정을 완벽히 갖춰야 하고, 수만 개 이상의 반도체 칩과 핵심 전자 부품도 수급해야 한다. 반도체 대란에, 인건비 및 자동화 공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2만 달러 이하의 로봇 판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3~5년 내에 상용화하겠다는 계획도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걷고, 화분에 물 주고, 박스 하나 드는 행동을 구현하는데 1년의 기간이 걸렸다. 게다가 테슬라의 로봇은 아직 다른 로봇 전문업체들에 비해 뒤처지는 수준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인간처럼 춤을 추고, 점프나 덤블링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파쿠르도 할 수 있다. 반면 자율주행 기술조차 10년이 넘도록 개발하고 있는 테슬라가 걷고 뛰고 디테일한 동작을 해내는 로봇을 구현하기에 3~5년은 부족하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속단하긴 어렵다. 세간의 의심을 반박하듯 테슬라는 2023년 5월 16일 주주 총회에서 로봇 업데이트 소식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테슬라 봇’에는 인간의 동작을 AI가 학습하는 능력이 추가됐는데, 인간의 손가락 움직임을 섬세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모터의 힘을 제어하는 ‘모터 토크 제어(Motor Torque Control) 기술’이 반영돼 필요할 때는 강한 힘을 내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을 할 때는 계란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힘의 완급 조절이 뛰어났다.

로봇의 대량생산과 파격적인 가격 설정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선언한 사람이 ‘일론 머스크’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전기차의 성공을 믿지 않았을 때 그는 전기차 대중화를 예견했고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라면 휴머노이드 로봇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세상의 의심을 뚫고 로봇 대량생산에 성공할지 미래가 궁금해진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한 이유

용접로봇

▲ 자동차 공장에서 로봇이 자동차를 용접하는 모습

이미 대다수의 제조 공장에서는 6축 로봇*, 4축 로봇*, 협동 로봇 등 많은 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이 로봇들은 용접, 페인팅, 조립, 머신 텐딩*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사람이 하기엔 위험하거나 생산성이 낮은 일,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이미 ‘기계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다.

* 6축 로봇 : 6개 축을 가지고 있어 3차원 공간의 모든 위치와 방향으로 작업 가능한 로봇

* 4축 로봇 : 4개 축으로 수평 작업에 특화된 로봇. 수평다관절 로봇이나 스카라 로봇이라고도 불린다.

* 머신 텐딩(Machine Tending) : 기계 작동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 작업. 예를 들어 원자재를 기계에 투입하거나 가공물을 기계에서 꺼내는 과정이 있다. 최근에는 손이 끼일 위험이 있거나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다루는 경우 협동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추세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로봇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기 위해선 인간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슬라가 성인과 비슷한 키와 무게를 지닌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빙로봇

▲ 서빙 로봇

식당에서 음식을 테이블까지 운반해 주는 서빙 로봇의 경우, 손님이 많아 바쁜 시간대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손님이 뜸한 시간대는 할 일이 없어진다. 인간 직원은 서빙 업무가 없어도 청소를 하거나 식기를 정리하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서빙만’ 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손님이 와야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만약 이 서빙 로봇이 운반만 할 줄 아는 로봇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면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 인간을 도왔을 것이다. 산업용 로봇은 꼭 휴머노이드 형태일 필요는 없지만, 서빙 로봇처럼 주어진 업무만 가능하다면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높은 자유도를 지닌 것이 강점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기존 산업용 로봇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이나 물류 창고에 투입된 바퀴 달린 운송용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신체와 행동 양식에 맞춰 다양한 작업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돌발 상황에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 이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기존 산업용 로봇과 별도로 새로운 로봇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까지 1,540억 달러(약 214조 원) 규모가 될 것이라 추정했는데, 이는 전기차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또한 2030년 중반부터 미국 제조업, 서비스업 노동력 부족의 격차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는데, 한 예로 전 세계 노인 간호 수요의 2~3%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맡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노동 시장의 높은 인건비를 고려하면 대당 2만 달러의 다용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매우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저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용화되면 가사 노동이 해결되는 노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로봇 1대가 청소, 빨래, 방범, 장보기, 심지어는 요리까지 모두 해결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이 모든 가사 노동을 해줄 로봇이 대당 2만 달러라면 많은 소비자들이 환영할 것이다. 만약 테슬라가 다음 ‘AI 데이’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빨래를 널고 설거지하고 장을 보는 모습을 시연한다면, 각 가정에서 너도나도 주문 예약 버튼을 클릭하지 않을까.

궂은 일은 제가 할게요, 파트너로서 같이 일하는 협동 로봇

성수동의 한 카페를 방문하면 사람이 아닌 로봇이 커피를 내려준다. 고객이 원하는 원두를 선택해 주문하면 ‘드립봇(Dripbot)’이라고 하는 로봇팔이 각 원두에 맞는 핸드드립 기법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메뉴를 고민하는 고객은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메뉴를 선택하면 되고, 카페 매니저는 로봇 동료 덕에 고객과의 소통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이처럼 반복적인 작업은 로봇이 맡고 직원들은 고객과 소통하거나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창의력이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고객 서비스 품질은 높아지고 직원들의 근무 환경까지 개선된 사례다.

로봇팔,핸드드립

▲ 로봇팔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

프랑스의 스타트업 회사 ‘EKIM’은 로봇과 함께 피자를 만든다. 로봇은 500만 개의 레시피를 활용해 피자를 만들며 최대 10개의 피자를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 고객은 각자 원하는 레시피의 피자를 맛볼 수 있고 직원들은 수십 가지의 재료 배합을 일일이 암기하지 않아도 돼 레시피 개발 등 더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로봇은 더 이상 공장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커피를 만들거나 사진을 촬영하고 악기를 연주한다. 로봇은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닌 사람의 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 자리 잡고 있다.

챗GPT로 더욱 똑똑해지는 로봇의 미래

2023년 3월, 챗GPT 열풍을 몰고 온 AI 개발사 ‘오픈AI’가 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오픈AI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바로 노르웨이의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1X 테크놀로지스’였다. 1X 테크놀로지스는 시리즈 A2 펀딩 라운드에서 2,350만 달러(약 306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투자에 오픈AI 외에 타이거 글로벌, 샌드워터, 알리앙스 벤처스 등도 참여했다.

1X 테크놀로지스는 투자받은 자금을 노르웨이와 북미 지역에 출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이브(EVE)’의 제조 시설과 2족 보행 안드로이드 로봇 ‘네오(NEO)’의 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투자를 주도한 오픈AI는 “1X 테크놀로지스가 미래의 일터에 대한 접근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며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만남이 현실화 됐다.

▲ 1X 테크놀로지스에서 공개한 2족 보행 안드로이드 로봇 네오 (출처 : 1X 테크놀로지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로봇 기업 투자를 AI 언어모델을 물리적 세계로 적용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생성형 AI 언어모델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면, 자연어 명령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AI 기술의 발전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의 출현으로 이어질거라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MS의 자율시스템·로보틱스 연구팀이 2023년 3월에 공개한 영상에서 챗GPT에게 ‘거울을 활용해 로봇으로 셀카를 찍어 달라’고 요청하자 컴퓨터 코드가 작성되고 로봇이 이를 즉각 실행하는 모습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나무 블록을 활용해 회사 로고인 MS를 형상화하도록 챗GPT에게 명령하자 코드를 전달받은 로봇팔이 빠르게 로고를 만드는 영상도 공개되었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비서 ‘자비스’가 현실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봇연구그룹(BIG)은 그림을 그리는 로봇 ‘프리다(FRIDA)’ 개발에 성공했다. 고도화된 AI를 탑재해 사용자가 원하는 그림을 말이나 사진으로 설명하면 로봇팔이 한 획 한 획 그림을 직접 그려낸다. 프리다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업 전에 전체 그림을 계획한 뒤, 실시간으로 자신의 붓질과 캔버스의 상황을 파악해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국내 한 백화점은 챗GPT를 적용한 AI 기반 안내 로봇 ‘GPT-플래티’를 선보였다. GPT-플래티는 고객의 질문을 듣고 매장과 시설 위치를 안내한다. GPT-플래티는 로봇에서 생성되는 위치정보와 비전(Vision) 정보를 챗GPT와 연동하여,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 음성으로 안내한다. 또한, 12개의 서로 다른 화각과 해상도, 기능을 가진 멀티 카메라와 고성능 AI 비전 분석 플랫폼을 탑재하여, 공간의 작은 변화를 탐지하고, 방문하는 고객들의 혼잡도와 동선, 행동, 인구 특성 등 특이점을 실시간 분석하여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고 알림을 제공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로봇과 AI는 거의 한 몸과 같은 관계다. 로봇에 쓰이는 AI를 ‘로봇지능’이라고 하는데, 로봇지능이 발달할수록 더 똑똑한 로봇이 나오고 로봇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들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로봇 분야에도 계속 적용될 전망이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유의미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제조, 물류 등 산업 전 영역에서 ‘노동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여러 나라들은 국가경쟁력에 직결되는 산업 및 군사 안보의 발전을 위해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지능’이 똑똑해질수록 로봇의 활용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진다. 테슬라를 비롯한 로봇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챗GPT처럼 똑똑한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일 것이다. 거실을 청소하고 음식을 나르던 로봇이 AI와 결합하면서 말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한층 더 인간에 가까워진 행동을 하게 되었다. 유례없는 속도로 AI가 발전하면서 로봇 역시 어디까지 진화할지 앞으로의 미래가 주목된다.

※ 본 칼럼은 반도체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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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빅테크 1편] 인간의 뇌를 닮은 ‘초거대 AI’가 바꾸는 세상 (1/5) /big-tech-1-ai/ /big-tech-1-ai/#respond Thu, 27 Apr 2023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big-tech-1-ai/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2022년 11월 말에 세상에 등장한 챗GPT는 아이폰, 알파고의 등장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챗GPT의 등장으로 ‘초거대 AI’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고,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펼쳐졌다. 초거대 AI는 대체 무엇이고, 현재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을까? 이에 관해 살펴보고 앞으로의 찾아올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

초거대 AI는 인간의 뇌 구조를 닮은 딥러닝 기반 AI

초거대 AI(Super-Giant AI, Hyperscale AI)는 딥러닝 기법을 쓰는 인공신경망 가운데서도 파라미터(Parameter, 매개변수)가 무수히 많아 스스로 학습·사고·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AI를 의미한다.

초거대 AI란 위 개념을 바탕으로 국내 한 AI 연구원이 만든 용어로, 아직 파라미터의 개수나 사고의 깊이 등 명확한 기준이 규정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통상적으로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 딥러닝을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며 판단할 수 있는 AI를 가리켜 ‘초거대 AI’라고 부르고 있다.

▲ 인공지능에 쓰이는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차이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학습)과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구분된다. 머신러닝은 누적된 경험을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하는 알고리즘이다. 처리해야 할 정보를 더 많이 학습하기 위해서는 보통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개념 중 하나인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에서 발전한 형태다. 인공신경망은 뇌의 뉴런과 유사한 정보 입출력 계층을 활용한 것으로, 블랙박스 형태로 데이터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복잡한 수학식 모델링이 이뤄지는 기법이다. 네이버의 번역 서비스 ‘파파고’나 구글의 번역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딥러닝은 이러한 인공신경망을 사용한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 딥러닝 영역에 속하는 것이 초거대 AI다.

딥러닝은 추상적인 정보를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머신러닝은 컴퓨터에 입력할 소재를 인간이 먼저 처리해 줘야 했다. 사진 정보 학습을 예로 들면 사람이 먼저 트레이닝 데이터를 분류해 입력하면, 컴퓨터가 데이터에 포함된 특징을 축적·분석해 답을 도출해 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딥러닝은 이런 번거로운 작업이 생략된다. 딥러닝 알고리즘이 스스로 분석하고 답을 내기 때문이다.

딥러닝의 이러한 추론 능력 때문에 초거대 AI가 기존 데이터들을 학습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어떤 창작 혹은 예술 작업을 할 때, 먼저 이전에 나온 수많은 작품들을 보고 듣고 참고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초거대 AI는 대용량 데이터를 학습해 기존 AI보다 더 인간의 뇌에 가깝게 학습 및 판단 능력이 향상된 형태다. 알파고는 바둑 분야에 특화돼 있지만 초거대 AI는 여러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학습해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기존 AI보다 수백 배 이상의 데이터 학습량이 필요하다.

초거대 AI는 어떻게 초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뇌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답은 인간 뇌의 뉴런 간 정보전달 통로인 시냅스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파라미터’에 달렸다.

초거대 AI의 능력을 결정짓는 파라미터

▲초거대 AI에 쓰이는 인공신경망의 원리

인간의 뇌는 1,000억 개 이상의 뉴런(신경 세포)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런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여러 입력값들)을 받으면 이를 가중해 합산하고 그 값이 임계값을 넘으면 다음 뉴런에 신호를 전달한다. 각 뉴런들은 100조 개 이상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서로 전기,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처리한다. 인공 신경은 사람의 뉴런을 모방해 여러 가지 입력값에 가중치를 두고 이를 합친 뒤 그 값이 임계값을 넘어서면 출력한다. 이 인공 신경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것이 인공 신경망이다.

초거대 AI는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공 신경망의 파라미터에 의해 작동한다. 인간의 시냅스는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데, 뉴런과의 상호작용으로 기억, 학습, 인지 기능이 나타나게 된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뇌는 100조 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다. 딥러닝으로 AI를 학습시킨다는 것은 가중치, 즉 파라미터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판별할 때 고양이가 갖고 있는 여러 요인에 어떻게 가중치를 부여해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를 계산해 내는 것이다. 고양이를 정확하게 분류하는 딥러닝 모델을 만들려면 품질이 높은 고양이 이미지와 고양이를 분류하는 요인들이 다양해야 한다. 쉽게 말해 눈과 코의 모양만으로 분류하는 것보다 눈, 코, 입, 귀, 꼬리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초거대 AI는 파라미터가 많을수록 더 정교한 학습을 할 수 있다. 결국 AI의 기술 발전은 파라미터 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초거대 AI는 어디까지 발전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알아보자.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초거대 AI

초거대 AI는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난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초거대 AI ‘알파폴드2(AlphaFold2)’는 단백질 접힘* 구조를 분석해 많은 이목을 끌었다.

*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 단백질은 체내에서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1차원 서열에서 3차원 구조를 형성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구부러지면서 3차원 입체 구조가 형성되며, 이때 단백질의 특징과 기능이 결정된다. 단백질 접힘 구조를 알 수 있다면 단백질의 역할을 이해하고, 잘못 접힌 단백질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의 진단 및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과학자들이 X선,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저온전자현미경(Cryo-EM)을 이용하여 단백질 구조들을 밝혀내 단백질 데이터 은행(Protein Data Bank, PDB)을 구축했다. 다만 수개월~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많은 비용이 들어 수억 개의 단백질 중 겨우 18만 개가 넘는 단백질 구조만을 저장할 수 있었다.

▲ 이전 버전의 성과를 크게 뛰어넘은 알파폴드2의 단백질 구조 예측 점수

그런데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에서 알파폴드2는 기존에 30~40점대 수준이었던 단백질 접힘 예측 점수를 90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구조 예측에 걸리는 시간도 수 분에서 수 시간으로 단축했다. 알파폴드2는 단백질 서열이나 구조 중에서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에 ‘집중’해서 정보를 가져와 정보 처리에 드는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알파폴드2의 놀랄만한 성능 덕분에 예측할 수 있는 단백질 수는 획기적으로 증가해 2022년 7월 기준으로 지구상에 알려진 거의 모든 단백질(약 2억 개)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 Critical Assessment of protein Structure Prediction) : 단백질 구조 예측 알고리즘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경쟁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후원하는 국제 대회다. 1994년 시작돼 2년마다 개최된다.

이처럼 알파폴드2라는 초거대 AI 덕에 인류는 생명 현상의 메커니즘을 밝혀낼 실마리를 얻었다. 알파폴드2의 성과로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기존에 고치지 못한 질병 치료에 진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 더욱 발전할 초거대 AI로 인류는 질병을 극복하고 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람에 가까운 AI 챗봇, 챗GPT의 등장

2022년 11월 말, 챗GPT의 등장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챗GPT는 오픈AI가 개발한 GPT-3.5 버전에 해당하는 대화형 AI 서비스로, 이용자와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이전 버전인 GPT-3의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AI 챗봇과 달리 훨씬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져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챗GPT는 온라인에서 가져온 방대한 양의 텍스트 샘플을 학습하고,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정보를 제공한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맥락에 맞지 않거나, 어색한 회피성 답변을 보이던 기존 챗봇과는 달리, 챗GPT는 실제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간단한 질문뿐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요약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스스로 내놓은 답변에 대한 실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전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부적절한 요청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절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차를 훔치는 방법에 대해 물을 경우 “차를 훔치는 것은 심각한 범죄”라고 말하며 답변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AI 챗봇이 이전 대화를 기억하지 않는 반면, 챗GPT는 사용자와 이전에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대화에 반영한다.

전문가들이 챗GPT에 흥분하는 이유는 짧은 논문이나 에세이, 노래, 시 등을 작성할 수 있고, 심지어는 코딩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어로 질문이 가능하고 답변도 한국어로 받을 수 있다. 기존의 AI 챗봇과 대화할 때는 AI가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단어나 문장 등을 고민하며 작성했는데 챗GPT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정말로 사람과 대화하듯 질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접 사용해 본 결과 초거대 AI에 대한 질문에 개념을 잘 설명해 주었고,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려주거나 비 오는 날 들을 만한 음악 추천도 해주었다. 답변을 보면 알겠지만 내용 자체가 엄청 대단하거나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의 자연스러움이 기존의 AI 챗봇과 전혀 달랐다. 게다가 준비된 답변이 아닌 질문을 이해해서 답변을 ‘만들어 내는’, 즉 ‘생성(Generative)’해 낸다는 점이 앞으로의 발전에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다.

▲ 챗GPT에게 질문해서 얻은 결과

챗GPT 출시 4개월 만에 깜짝 등장한 GPT-4

세상을 놀라게 한 챗GPT가 출시된 지 4개월 정도 지난 2023년 3월 14일, ‘GPT-4’가 출시됐다. 2023년 상반기 이후에나 출시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등장한 것이다. GPT-4는 유료 버전인 ‘챗GPT PLUS’에서만 사용 가능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뉴 빙(New Bing)’에도 탑재되어 꼭 유료 버전을 구입하지 않아도 GPT-4를 체험해 볼 수 있다.

GPT-4는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단어 수가 크게 늘었다. 이전 버전인 챗GPT는 최대 약 8,000개의 단어를 입력할 수 있었고, 이는 책 4~5페이지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반면 GPT-4는 약 6만 4,000개의 단어를 입력할 수 있는데, 약 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웬만한 단편 소설 한 편과 맞먹는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도 한 번에 입력해 요약해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요약 정리 해준다.

언어 구사 능력도 향상되었다. 한국어를 포함한 26개 언어에서 70% 이상의 정확도로 이해력이 크게 향상됐다. GPT-4의 처리 가능 영어 단어는 2만 5,000개로 챗GPT의 약 8배로 늘어났다. GPT-4는 말투나 스타일도 변경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GPT-4에게 해적 스타일로 말해달라고 요청하면 해적의 말투로 답변을 내놓는 식이다.

독창성과 창의성도 강화되었는데, 동화 신데렐라의 줄거리를 A~Z 순으로 각 알파벳을 사용하되 중복되는 단어 없이 요약해달라는 요청에도 완벽하게 요구 사항을 수행해 냈다. 이런 글짓기는 인간도 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GPT-4는 단시간에 해낸 것이다. 참고로 같은 질문을 구글의 AI 서비스 ‘바드(BARD)’에게 하면 글짓기는 고사하고 질문을 무시한 답변만 나온다.

▲ GPT-4에게 신데렐라의 줄거리 요약을 요청한 결과 / 오픈AI의 자료를 재가공

이미지를 해석할 수 있는 멀티모달 GPT-4

GPT-4의 지능 역시 높아졌다. 특히 전문적인 시험에서 ‘인간 수준의 능력’을 보여줬는데, 미국 모의 변호사 시험에서는 90번째,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읽기와 수학 시험에서는 각각 93번째와 89번째의 백분위수를 기록했다. 이는 상위 10%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기존 챗GPT는 하위 10% 정도의 점수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GPT-4에서도 수학 문제 해결 능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GPT-4는 기존 챗GPT에 비해 사실을 기반으로 대답하는 응답 비율이 40% 정도 높아졌다. 인터넷 밈(Meme: 유행하는 콘텐츠)으로도 유명했던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에 대해 GPT-4에게 질문하면 “이 질문은 농담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해 어느 정도 허구와 사실을 구별해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나 허구, 적대적 표현과 관련한 문제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GPT-4에서도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거짓 답변 현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편, GPT-4의 정보 역시 아직은 기존 챗GPT와 동일하게 2021년 9월까지의 정보를 제공한다.

*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 한 네티즌이 챗GPT에게 ‘세종대왕 맥북프로 던짐 사건’에 대해 알려달라 물었고, 이에 챗GPT가 마치 실제 있었던 역사처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중 맥북을 던졌다’고 응답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GPT-4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멀티모달 모델(Multi-Modal: 텍스트, 사진, 음성, 동영상 등 여러 복합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AI 모델)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텍스트만 인식할 수 있었던 기존 챗GPT와 비교해 사진이나 그림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이미지 속 ‘맥락(Context)’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밀가루와 달걀 사진을 GPT-4에 입력한 뒤 “이 재료로 무슨 음식을 만들 수 있어?”라고 물으면, GPT-4는 “팬케익이나 와플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또 많은 풍선이 달려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줄을 자르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어보면 “하늘로 날아갈 것”이라고 답해 그림 속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공기보다 가벼운 물체는 떠오른다는 개념까지 포함해 답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람쥐가 카메라를 들고 호두를 찍는 사진’을 GPT-4에게 보여주며 ‘이 그림의 어디가 웃기지?’라고 물으면 GPT-4는 “다람쥐는 호두를 먹지 사진을 찍지 않는데 마치 다람쥐가 사진사처럼 사람 흉내를 내는 부분이 재밌다”라고 유머 섞인 답변도 내놓는다.

‘알잘딱깔센’ 초거대 AI 비서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이 초거대 AI에서 가장 주목할 특징은 바로 ‘생성’,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AI에게 어떤 것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그 요구에 맞춰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AI를 ‘생성형 AI(Generative AI)’라고 한다.

이는 AI에게 특정 개념을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원본을 제공하고 나머지 부분을 예측하도록 유도해 그 과정에서 AI가 추상적인 표현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이다. 주어진 학습 데이터와 유사한 분포를 따르는 데이터를 생성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원본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실존하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새로운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 텍스트 또는 코드 등의 창작물을 연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룬 것은 이미지 생성 AI다. 실제로 현재 ‘미드저니’, ‘달리 2(DALL-E 2)’, ‘크레용(Craiyon)’ 등 그림을 그려주는 초거대 AI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텍스트를 입력하기만 하면 손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 ‘모네 스타일로 파리에서 비가 오는 날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노인’을 그려달라고 미드저니에게 요청해 얻은 그림

‘Generative’, ‘생성’이 갖는 의미는 일일이 AI에게 지시하거나 학습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이용자가 요구하는 바를 만드는,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AI’의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비서 ‘자비스’와 같이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AI가 우리 일상 곳곳에 도입되어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해 ‘AI가 사람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라는 충격을 줬다면, 챗GPT는 ‘AI가 사람처럼 쓰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GPT-4’ 등장과 함께 빅테크들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초거대 AI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제 초거대 AI의 남은 과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가까운 미래의 초거대 AI가 이 문제까지 극복할 수 있다면 인류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AI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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