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 기자 – SK hynix Newsroom 'SK하이닉스 뉴스룸'은 SK하이닉스의 다양한 소식과 반도체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전달합니다 Fri, 20 Dec 2024 02:08:26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7.1 https://skhynix-prd-data.s3.ap-northeast-2.amazonaws.com/wp-content/uploads/2024/12/ico_favi-150x150.png 노경목 기자 – SK hynix Newsroom 32 32 지피지기(知彼知己)… 복잡해지는 대외 방정식, 중국 반도체 실력을 긴급 점검해보다 /jifijigi-getting-complicated/ /jifijigi-getting-complicated/#respond Tue, 23 Jul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jifijigi-getting-compli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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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내우외환이 늘면서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속도가 늦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반도체 국산화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 반도체 양산의 현주소를 점검하여 경쟁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는 뜻이죠. 흔히 따라붙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단어까지 더해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 상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2019년 7월 현재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상황을 짚어봅니다.

선두업체에 4세대 뒤처지는 S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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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IC 사옥 전경 (출처: https://www.smics.com/)

우선 중국 내 반도체 제조업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매출을 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제조업체) SMIC를 살펴보겠습니다. SMIC는 현재 웨이퍼 기준 월 66만6,000장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12인치 웨이퍼가 19만6,000장, 8인치 웨이퍼가 47만 장입니다. 선전과 텐진, 닝보에 8인치 공장이 있으며 베이징 공장에서는 12인치를 생산합니다. 본사가 있는 상하이에선 8인치 22만 장, 12인치 9만 장의 생산능력을 갖췄습니다.

생산능력만 놓고 보면 주목할만하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좀 뒤떨어져 있습니다. 50나노 이상이 74%, 40~45나노가 20%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28나노 공정을 최근에야 시작했습니다. 전체 생산에서 28나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6%입니다.

이는 삼성전자와 TSMC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들에 비해 뒤떨어진 것입니다. 대만 TSMC는 7나노가 전체의 9%이며 10나노 11%, 16~17나노 23% 등의 비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8나노는 20%로 전체의 생산량의 63%가 28나노 이상입니다. SMIC보다 4세대 이상 앞서 있는 것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 생산 비중 확대가 절실해진 상황에도 화웨이 등 중국 전자업체들이 TSMC 등 해외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64단 3D 낸드에 도전하는 칭화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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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화유니 (출처: http://www.unigroup.com.cn/)

메모리 제조업체 중에 가장 상업 생산에 가까운 업체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칭화유니입니다. 지난해 32단 3D 낸드를 생산하는 데 성공해 곧 상업 생산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칭화유니의 낸드 양산은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뤄질 전망입니다. 3D 낸드의 대세가 64단 이상으로 바뀐 가운데 32단 낸드의 시장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칭화유니의 32단 3D 낸드 라인의 생산능력은 월 5,000장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32단 3D 낸드를 양산해 돈을 벌기보다는 보다 높은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포석 정도의 전략을 세웠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따라 칭화유니는 올해 5월 64단 3D 낸드 생산장비를 들여왔습니다. 생산 능력은 월 2만 장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64단 3D 낸드는 중국이 시장에 내놓는 첫 메모리 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양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도 장비 설치에 2~3개월, 안정화와 시험생산에 6~8개월이 걸립니다. 칭화유니가 64단 3D 낸드에 처음 도전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생산 시점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입니다.

양산 포기한 푸젠진화, 생산라인 개발 나선 허페이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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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페이창신 (출처: https://www.cxmt.com/)

D램에서는 허페이창신이 사실상 유일한 업체로 남았습니다. 양대 D램 업체로 꼽히던 푸젠진화가 마이크론 기술 도용과 관련된 미국의 장비 수출 제한으로 지난해 말부터 제품 개발과 조업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푸젠진화는 파운드리로 전환, 마이크론으로 매각 등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허페이창신 역시 푸젠진화가 직면했던 마이크론 기술 도용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만 반도체업체 이노테라의 인력 400여 명을 고용해 개발에 나섰던 23나노 D램이 마이크론의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허페이창신은 기술 도용 문제를 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생산라인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확보한 이노테라 인력은 공정 개발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허페이창신은 다음 달 월 1만 장 생산량 규모의 D램 생산설비를 들여올 예정입니다. 새로운 라인이 개발되지 않은 가운데 설비부터 갖추는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설비를 들여올 기회를 잡았기 때문으로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려면 많은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생산 예상 시점은 빨라야 2021년입니다.

이같은 내용만 놓고 보면 중국 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으로 지리멸렬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 업체들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가 SK하이닉스의 경쟁상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그런 미래 자체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생산은 그 자체로 한국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에 따라 수익률도 점차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중국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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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실리콘, 美中 무역전쟁 속 ‘외수외미(畏首畏尾)’ 화웨이 구할까 /hi-silicon-us-and-china/ /hi-silicon-us-and-china/#respond Thu, 27 Jun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hi-silicon-us-and-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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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수외미(畏首畏尾). 머리가 어찌 될까 두려워하고, 동시에 꼬리도 어떻게 될지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크게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나타내는 사자성어입니다. 최근 중국의 간판 기업 화웨이가 그야말로 외수외미의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무역전쟁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이 특히 화웨이를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항전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놀라운 성장세로 중국 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팹리스 업체입니다.

美中 무역전쟁 속 위기에 몰린 화웨이

미중 무역전쟁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많은 중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또 어떤 독설이 중국 산업 및 경제계를 향해 날아들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은 단연 화웨이입니다. 미국은 화웨이의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설비는 물론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판매 및 제품 개발 제한에 나서고 있습니다.

5월 16일에는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와 화웨이 계열 68개사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국의 허가 없이는 미국 기업들이 이들 업체에 제품과 기술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인텔이 만드는 반도체를 비롯해 구글 검색과 유튜브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막히면서 화웨이의 시장 확대는 큰 지장을 받게 됐습니다. 당장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화웨이는 향후 2년간 예상 대비 300억 달러(35조6010억 원) 적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화웨이와 그 계열사들을 큰 시름에 빠뜨린 미 상무부 발표 다음 날, 결사 항전을 선언한 업체가 있습니다. 바로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입니다. 허팅보 하이실리콘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극단적인 상황을 대비해왔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제공하는 모든 첨단 기술과 칩을 사용할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화웨이가 고객들에게 안정적인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수천 명의 하이실리콘 임직원들은 화웨이의 생존을 위해 기술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행진을 완수할 것입니다.”

‘잘 나가는’ 하이실리콘, 모회사 화웨이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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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rin980 system-on-a-chip (출처: HUAWAY)

하이실리콘은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는 ‘팹리스’입니다. 화웨이의 주력 제품인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각종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한 뒤 대만 TSMC 등에 위탁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화웨이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된 AI(인공지능)칩 ‘기린’, 5G 통신장비의 핵심인 ‘바룽’칩도 하이실리콘이 만든 것입니다. 데이터센터용으로 만든 서버용 칩 시리즈인 ‘쿤펑’ 역시 높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스냅드래곤 시리즈 등 퀄컴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인텔의 각종 시스템 반도체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칩의 종류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까지는 버틸 수 있는 정도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습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수출 금지 조치가 유지된다면 재고가 소진된 이후 화웨이가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하이실리콘의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런정페이 회장을 비롯한 화웨이 수뇌부도 하이실리콘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이실리콘이 단순한 자회사가 아니라는 것은 허팅보 사장의 위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화웨이의 미래 준비를 책임지는 ‘2012 연구소’의 소장을 겸하고 있으며 런정페이 회장 등과 나란히 화웨이 이사회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화웨이로서는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96년 엔지니어로 입사한 허팅보 사장은 20년 가까이 화웨이 이사회 회장을 맡았던 순야팡, 런정페이의 친딸이자 CFO의 멍완저우와 함께 중국내 손꼽히는 여성 리더입니다. 적극적인 여성 인재 활용은 화웨이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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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Multi-mode Chipset ‘Balong 5000’ (출처: HiSilicon)

하이실리콘은 중국 전체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1분기 매출은 17억5500만 달러(약 2조1000억 원)에 이릅니다. 중국 반도체 생산업체 중에 그나마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SMIC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33억60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업체가 바로 하이실리콘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모회사인 화웨이는 올해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이실리콘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대비 41% 성장한 것입니다. 화웨이가 필요로 하는 칩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설계해 판매하고 있는 것이 비결입니다. TV용 디스플레이 드라이브칩과 사물인터넷(IoT)칩, 보안 관련 각종 시스템 반도체도 하이실리콘이 진출한 영역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이실리콘은 보안용 칩 시장에서 중국내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TV용 칩에서도 3분의 1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통신 및 스마트폰 관련 칩 중에 하이실리콘이 개발하지 못한 제품도 적지 않습니다. 통신장비의 핵심인 무선주파수칩은 하이실리콘이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용 무선통신칩 역시 전량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화웨이로 향하는 생명선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제품은 하이실리콘이 자원을 집중할 분야로 꼽힙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화웨이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대응 과정에서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역량 역시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무역전쟁이 반도체 업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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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흑막, 다탕전신의 수락석출(水落石出) /china-system-semiconductor/ /china-system-semiconductor/#respond Tue, 28 May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china-system-semi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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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석출(水落石出). 하천에 물이 빠져 돌이 모습을 드러내듯, 시간이 지난 뒤 사건의 진상이나 배후의 흑막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국가가 경제 및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기업도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과 그 실체가 다를 때가 많죠.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부풀려진 경우도 있지만, 복잡한 소유구조 등을 통해 실제 규모를 축소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여러 통신칩 설계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중 하나로 알려진 다탕(大唐)전신은 규모와 역할이 축소된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제조업체) SMIC의 최대 주주이면서 중국 정부 산하의 국영기업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칭화유니 이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기업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베일에 싸인 반도체 굴기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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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탕전신 로고 (출처: DATANG TELECOM TECHNOLOGY & INDUSTRY GROUP)

1998년 창업한 다탕전신은 중국 팹리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기업 중 하나입니다. 2003년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기술 및 재정 지원하에 3세대 이동통신(3G) 칩을 독자 개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탕전신의 모회사인 다탕그룹은 전자업뿐 아니라 발전, 전력인프라,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들이고 있는 국영기업입니다. 한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 소속 기관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경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다탕그룹 및 주요 자회사의 최고경영자 선임, 주요 투자는 모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결정을 거칩니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다탕전신은 여기의 손자회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배경은 2008년 SMIC의 최대 주주가 되는 과정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SMIC는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설립 초기에 아직 많은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파운드리 라인을 채울 주문을 추가로 수주해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다탕전신은 SMIC에 필요한 자본을 댈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개발한 통신칩 생산을 SMIC렌신커지에 의뢰했습니다. SMIC 입장에서는 투자자와 고객을 한번에 유치한 것입니다.

다탕전신은 자체 반도체 설계 이외에 여러 팹리스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업체가 렌신과기입니다. 다탕전신이 상대적으로 통신 관련 칩에 주력하는 사이 렌신과기는 백색가전 등에서 필요한 각종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반도체 독립을 위한 중국 정부의 의지가 다탕전신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분석되는 대목입니다. ‘대륙의 기적’으로 불리는 전자업체 샤오미도 렌신과기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각종 시스템 반도체를 공급받았습니다. 최근에는 1억 위안을 들여 렌신커지의 각종 특허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 통신업체 퀄컴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다탕전신과 퀄컴의 주력 분야가 통신칩인 점을 감안하면 링셩과기라는 이름의 이 합작회사 역시 통신칩 개발에 주력할 전망입니다. 퀄컴이 굳이 기술격차가 큰 다탕전신과 합작회사를 차린 이유는 중국 시장 진출에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물론 작년 하반기부터 미중 무역전쟁이 달아오르면서 합작회사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차 드러나는 다탕전신의 흑막(黑幕)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다탕전신은 그러나 최근 여러 어려움을 맞고 있습니다. 주력 분야인 통신칩에서 화웨이, ZTE 등에 뒤지고 있어서입니다. 이렇다 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지난해에는 베이징에 있는 연구개발센터 빌딩을 13억5000만 위안(약 2300억 원)에 매각하기도 했습니다.

칭화유니와의 경쟁도 부담스럽습니다. 두 곳 다 중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다탕전신은 기술개발이나 인수합병 등 여러 방면에서 칭화유니에 미치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칭화유니는 SMIC의 지분을 점차 늘리고 있어 다탕전신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통신칩이 경쟁력을 잃은 다탕전신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다양한 첨단 기술로 영역을 확장하는 칭화유니가 SMIC를 가져가는 것이 시너지가 크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특정 업종의 여러 기업을 동시에 지원해 경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 투자의 비효율성을 업체 간 경쟁을 통해 상쇄하기 위해서인데요. 이같은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떠오르지만 패배한 기업은 그대로 사라집니다. 수락석출은 경쟁 과정에서 실력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는 다탕전신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사자성어이기도 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china-system-semiconductor/feed/ 0 반도체굴기에 동참한 ‘중국의 IT공룡’ 알리바바의 소냉조(燒冷灶) /semiconductor-drilling/ /semiconductor-drilling/#respond Mon, 29 Apr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semiconductor-dri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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燒冷灶(소냉조). 차가운 온돌을 미리 덥혀놓는다는 뜻입니다. 현대 중국어에서 성어라기보다는 숙어에 가깝게 자주 쓰이는 말인데요. 당장은 쓰지 않지만 훗날을 위해 온돌에 불을 미리 올리듯 장래성이 밝은 일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워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장래가 유망한 사람에게 미리 아부해 환심을 사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난해 반도체 설계 관련 자회사를 세우며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알리바바의 행보는 여러모로 ‘소냉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스스로 아직은 소프트웨어 중심 업체지만 미래 산업을 좌우할 반도체에 발을 미리 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이는 중국 정부가 관심을 쏟는 반도체 굴기에 힘을 보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꿀오소리’ 알리바바의 반도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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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가 지난해 9월 설립한 반도체회사의 이름은 핑토우거(平頭哥)입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라텔의 중국식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꿀오소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도 유력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을 꿀오소리라고 지칭하면서 생김새와 성격이 잘 알려져 있기도 하죠.

작은 덩치임에도 어떤 상대를 만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상대하는 라텔은 불굴의 투지를 상징합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라텔을 처음 접한 뒤 새로 만들어질 반도체 자회사의 이름으로 고수했습니다.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 알리바바의 창업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는 후문입니다.

알리바바는 핑토우거 창립 1년여 전인 2017년 초부터 반도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연구소 다모위안(達摩院)을 설립해 세계 각지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영입한 것입니다. 150억 달러(약 17조 원)을 투자한 이 연구소의 2만5000여 명의 인재 중 적지 않은 수가 반도체 설계를 연구했습니다. ARM AMD 인텔 엔비디아 등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반도체 인력을 끌어들였습니다.

핑토우거는 다모위안 연구소의 반도체 관련 인력과 새로 인수한 반도체 설계업체 텐웨이의 조직을 합쳐서 출범했습니다. 구체적인 규모 등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만 사업 목표 등은 명확합니다.

AI칩부터 양자반도체까지… 알리바바의 원대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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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표는 라텔처럼 거침없습니다. 우선 연내에 기존에 나와 있는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반도체)보다 성능이 10배 향상된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하는 NPU는 단순히 입력에 따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값을 스스로 도출합니다. 인공지능(AI) 칩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내놓고 있는 퀄컴이 해당 영역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인텔도 높은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AI 칩 ‘기린’을 상용화한 화웨이도 높은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한 번도 자체 칩을 내놓은 적이 없는 핑토우거가 최소한 화웨이 기린의 10배에 해당하는 성능을 지닌 NPU를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핑토우거는 2~3년 뒤에는 최초로 양자반도체를 내놓겠다는 목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양자반도체는 물질량을 나타내는 최소 단위인 양자를 이용해 현대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대략적인 개념만 제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정의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핑토우거가 시제품 단계라도 양자반도체를 내놓는다면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바꿀 사건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리바바의 꿈, 과연 실현 가능할까?

반도체 설계는 공정 등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제작 단계의 노하우 축적이나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텔 등에서 일하던 중국 출신 기술자가 귀국해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설계회사를 창업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재에 대규모 투자를 한 알리바바가 핑토우거를 통해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반도체 설계 역시 공정 등 물리적 작업을 거쳐야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관련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핑토우거가 목표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양자반도체를 실제로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생산라인을 만들거나 찾지 못한다면 학술 논문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도체는 알리바바가 기존에 해온 업역과 시너지를 가지지 못합니다. 알리바바는 잘 알려진 대로 전자상거래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여행과 개인금융 등에도 진출했지만 역시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기반이 된 분야입니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전자부품인 반도체가 알리바바의 기존 사업 영역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그들 스스로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반도체 진출은 결국 중국 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알리바바가 수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더라도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기술자들을 중국 내에 묶어두며 이들의 연구성과를 축적할 수 있죠. “아부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소냉조’가 알리바바에게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 본 기사는 기고가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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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반도체’ 스파이칩, 정말로 존재할까? 중국의 소리장도(笑裏藏刀) /hacking-semiconductor/ /hacking-semiconductor/#respond Tue, 02 Apr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hacking-semi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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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을 지으며 칼을 감춘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상대를 속이고 방심한 틈을 타 해를 가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요. 최근 화웨이의 5세대(5G) 통신장비가 보안성 이슈에 휩싸였습니다. 미국은 5G 통신장비를 통해 중국이 각종 정보를 빼갈 수 있다며 주요 우방국에게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빼가는 해킹은 전용 장치를 임의로 장착하는 하드웨어(HW) 방식과 제어 프로그램 등을 변형하는 소프트웨어(SW) 방식으로 나뉘는데요. 통신장비는 개별 국가의 사정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SW 변형의 여지가 적습니다. 화웨이가 만약 통신장비를 이용해 해킹을 시도한다면 HW 방식을 쓸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해킹이 발각되지 않으려면 특정 HW에 아주 작은 전자 부품이 탑재돼야 합니다. 해킹을 전문으로 하는 반도체, ‘스파이칩’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IT 업계 발칵 뒤집은 중국발 스파이칩 보도

일단 화웨이가 스파이칩을 사용한 것이 적발된 적은 없습니다. 2016년 미국에서 판매된 화웨이 스마트폰에서 무단으로 사용자의 메시지와 통화기록 등을 빼가는 ‘백도어’가 발견됐지만 이는 SW를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화웨이는 이를 애플리케이션 제작사의 문제로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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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스파이칩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는 지난해 10월 미국 블룸버그의 보도에서 시작됐습니다. 블룸버그는 애플과 아마존 등 미국 내 주요 IT 업체에 서버를 공급하고 있는 슈퍼마이크로(Supermicro)의 제품에 스파이칩이 장착됐다고 했습니다. 슈퍼마이크로는 미국 회사지만 대부분의 제품을 만드는 중국에서 제조사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파이칩을 심었다는 것입니다.

블룸버그가 말한 문제의 스파이칩은 아마존이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 엘레멘털(Elemental)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이 업체는 슈퍼마이크로가 납품한 서버 메인보드를 쓰고 있는데, 여기에 탑재된 쌀알보다 작은 크기의 칩이 서버의 각종 정보를 빼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엘레멘털은 인공위성과 무인정찰기 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빠르게 압축해 CIA 본부로 전송하는 SW를 공급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스파이칩을 통해 중국이 해킹에 성공한다면 미국 안보에는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블룸버그는 인민해방군 소속 공작원 2명이 중국 현지 서버 제작공장을 통해 스파이칩을 삽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애플 역시 2015년 서버에서 이상한 칩을 발견했으며 이후 슈퍼마이크로에서 제작한 서버는 공급받지 않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스파이칩에는 서버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세서, 수집한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메모리, 이를 외부로 빼돌리는 네트워크 기능 등 여러 반도체가 장착돼 있습니다. 서버에 전원이 들어오면 스파이칩은 서버의 운영체제를 임의로 변형하고 해커의 명령에 따라 필요한 정보에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칩의 기술력을 둘러싼 논쟁

여기까지 들으면 무시무시합니다. 문제가 되는 슈퍼마이크로의 서버는 삼성과 LG 등 대기업,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 등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칩이 존재한다면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킹에서 자유로운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스파이칩은 오늘날 반도체 기술로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최근까지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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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근거는 우선 단순히 심는다고 해서 스파이칩이 구동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파이칩도 결국 전자 부품이고,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기가 필요합니다. 원활한 전기 공급을 위해서는 서버 메인보드 설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블룸버그의 보도처럼 단순히 제작 하청을 받은 중국 업체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설계를 임의로 바꿨다면 슈퍼마이크로와 고객사들이 손쉽게 해당 사실을 알아낼 수 있어 칩의 크기가 아무리 작더라도 해킹 시도가 드러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쌀알 한 톨보다 작은 크기에 프로세서와 메모리, 통신칩까지 통합한 칩을 만들어내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SK하이닉스에서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는 보통 손톱 크기에 비유됩니다. 메모리 하나만 하더라도 손톱보다 큰데 시스템 반도체까지 더하면 그 크기는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한 수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공정 기술이 아직은 높지 못한 점도 문제입니다. 블룸버그는 해당 기사에 스파이칩의 이미지를 실었지만, 이는 실제 모습이 아닌 가공된 이미지였습니다.

아마존과 애플도 블룸버그의 보도 직후 즉각 반박자료를 냈습니다. 아마존은 “인수 대상 기업 실사 과정에서 그같은 스파이칩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애플 역시 “서버에서 문제가 있는 칩이나 하드웨어 조작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단은 사실무근이라는 설명입니다.

물론 CIA부터 IT 업계의 여러 관계자들로부터 해당 정보를 습득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를 무시하기는 힘듭니다. 스파이칩이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클라우드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아마존이나 애플이 이를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보도의 진위 여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확실히 가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스파이칩의 존재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은 반도체가 어떤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스파이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쪽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현재 반도체 기술이 갖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이유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hacking-semiconductor/feed/ 0 파운드리 1등 TSMC의 연이은 사고, 韓 반도체 업계의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foundry-no-1-tsmc/ /foundry-no-1-tsmc/#respond Tue, 19 Feb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foundry-no-1-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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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옥을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내가 한발 더 진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2019년 새해, 세계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지난달 대만 TSMC가 생산라인에 기준에 미달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대거 손실을 입은 소식입니다. 지난해 8월 컴퓨터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산라인이 멈춘데 이어 반년 사이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두 번이나 발생한 것입니다. 철저한 공정 관리를 통해 고객의 신뢰를 축적한 TSMC의 사고는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고 발생 한 달 후, 대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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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MC (출처: TSMC)

기자는 이달 초 별도의 취재 건으로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설날은 대만과 중국 등 중화권에서 한국 이상의 큰 명절로 공식 휴일만 9일에 이르지만 TSMC 직원들은 예외였습니다. 다들 지난달 사고에 따른 수습으로 상당수가 설날 연휴도 없이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사고에 따른 피해 규모는 국내 매체에 최대 웨이퍼 10만 장 분량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대만 현지에서는 2만~3만 장 정도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TSMC는 “오염된 웨이퍼 상당 부분은 재생이 가능해 1분기 실적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자체 실적 전망치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지금의 TSMC는 우리가 알던 TSMC가 아니다”라며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이 지난해 6월 은퇴한 이후 굵직한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과정을 살펴보면 TSMC가 기본적인 공정 관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듭니다.

“기준에 미달하는 화학물질을 만든 협력사 잘못”

SK하이닉스 블로그 독자분들이라면 화학물질이 반도체 공정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아실 것입니다. 물질 자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물론, 점도와 기화점 등 세부적인 특성 하나하나가 반도체 제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당연히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화학물질 관리에 상당한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TSMC 측은 “기준에 미달하는 화학물질을 만든 협력사 잘못”이라며 “피해액의 상당 부분은 협력사가 배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준에 미달하는 화학물질이 생산라인에 투입될 때까지 TSMC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입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해당 화학물질이 사용된 생산라인의 하루 웨이퍼 처리량은 1000장 정도입니다. 피해 규모가 3만 장이라면 한 달 내내 문제가 있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고도 관리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반도체 업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TSMC에서는 화학물질을 공정에 투입하기 전 두 단계의 검수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협력업체는 생산된 제품을 TSMC의 검사 기준표에 맞춰 테스트한 뒤 화학물질을 보내야 합니다. 입고된 뒤에는 TSMC 자체적으로 샘플을 뽑아 본인들이 설정한 기준에 통과했는지 검사합니다. 공정 과정에서도 화학물질 이상을 걸러낼 기회는 많습니다. 웨이퍼가 정상적으로 가공되고 있는지를 인공지능(AI) 등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보고서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과장급 등 현장에 있는 직원부터, 공장장, 생산 담당 임원 등 고위 직급까지 단 한 명도 한 달 동안 제대로 일을 안 했다는 것” 대만 매체들은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모리스 창 퇴임 후 잇따른 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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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前 회장 (출처: TSMC)

화살은 지난해 6월 모리스 창 창업자의 퇴임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모리스 창은 물러나면서 자신의 역할을 두 명의 후배 경영인에게 나눠 맡겼습니다. 일상적인 경영은 웨이쯔자 회장,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주요 결정은 류더인 이사회 의장이 책임졌습니다. 보다 투명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대만 경영계에서는 TSMC의 뒤를 따라 경영자의 역할을 나누는 기업들이 늘어났습니다.

전직 TSMC 직원을 중심으로 한 대만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역할 분할이 책임을 모호하게 해 모리스 창 퇴임 이후 커다란 사고가 잇따르는 이유로 지적했습니다. “나사가 풀렸다” “허리띠가 느슨해졌다”라는 말은 물론 “1+1이 2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쓴소리가 잇따랐습니다. 한 대만 전자업체 관계자는 “모리스창이 있던 시절에는 주문을 내면 일주일 만에 생산을 위한 견적서가 왔는데 지금은 3~4개월이 걸린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물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제조)라는 업종 자체를 새롭게 창조하고 해당 분야의 시장을 절반 이상 장악하고 있는 TSMC의 저력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모리스창이 있던 시절에도 한 번씩 있었던 사고가 경영 투명화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실(Integrity)’, ‘응답(Commitment)’, ‘혁신(Innovation)’, ‘고객 신뢰(Customer-trust)’. 모리스 창이 창업 초기부터 강조한 TSMC의 핵심가치입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사건사고로 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라는 타이틀에 큰 타격을 입게 된 TSMC. 허물어진 기업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봐야 할 시점인 듯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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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진화 D램 사업에 위기를 몰고 온 中 반도체굴기의 방기곡경(旁岐曲逕) /fujian-jinhua-dram/ /fujian-jinhua-dram/#respond Mon, 14 Jan 2019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fujian-jinhua-dram/

방기곡경(旁岐曲逕). ‘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바른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의 각종 압력에 직면했던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가 외통수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푸젠진화의 D램 사업 추진이 파국을 맞고 있어서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제동 걸린 푸젠진화의 D램 사업

최근 기자와 만난 중국 내 반도체 업계 소식통은 “푸젠진화가 D램 라인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실상 D램을 포기하고 사업의 방향을 파운드리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허페이창신과 함께 중국내 양대 D램 업체 중 하나인 푸젠진화가 최종적으로 D램 사업을 포기하면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한쪽 날개가 꺾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의 결과입니다. 미국 상무부는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를 비롯한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에게 푸젠진화에 장비를 공급하지 말도록 조치했습니다. 11월에는 푸젠진화와 푸젠진화의 협력업체인 대만 UMC 직원들이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기술을 빼돌렸다며 고소했습니다.

이 같은 압박에 D램 생산을 위한 기술적 자문을 해온 UMC는 “관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푸젠진화와 하고 있는 D램 관련 연구개발 작업을 중단하겠다”라고 발표했습니다. D램 개발을 참여해온 UMC 엔지니어의 절반도 이달 초 다른 영역으로 전환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지난해 말까지 D램 생산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던 푸젠진화는 시제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핵심 장비 중 하나가 입고되는 등 생산라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으로부터 추가 장비 반입이 제한되고 기술 자문을 맡은 UMC 마저 손을 들면서 D램 생산에 나서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D램 사업 포기는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해온 UMC는 푸젠 진화의 파운드리 전환 자문을 맡았습니다. 더 나아가 UMC가 파운드리로 전환한 푸젠진화 공장을 직접 경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美 마이크론 소송으로 불씨 지폈다

재미있는 점은 먼저 사태를 발전시킨 것이 중국 측이었다는 것입니다. 푸젠진화와 UMC는 특허침해로 미국 마이크론을 제소했으며 푸젠진화가 있는 푸젠성의 푸저우 지방법원은 지난해 7월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내 제품판매를 중단시키는 가처분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미국에 푸젠진화를 강력하게 제재할 빌미를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는 마이크론 판매 중단 가처분명령을 내린 푸저우 법원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나옵니다.

푸젠진화는 25㎚(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통한 D램 생산을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 기술 수준은 32㎚로 평가됩니다. 20㎚ 공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25㎚ 공정에 힘을 쏟고 있는 허페이창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떨어집니다. 중국은 D램 국산화를 위해 2016년부터 두 업체에 대한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푸젠진화가 최종적으로 파운드리 공장에 머물게 되면 그동안 들인 수조원의 투자비의 대부분이 매몰비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푸젠진화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추격이 큰 지장을 받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체 기술과 장비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푸젠진화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추격이 큰 지장을 받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체 기술과 장비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fujian-jinhua-dram/feed/ 0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 무역전쟁에도 멈추지 않는 중국 반도체굴기 /chimangsun-station/ /chimangsun-station/#respond Mon, 17 Dec 2018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chimangsun-station/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 이가 없으면 입술에 의지한다는 의미의 한자성어입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속담과 비슷한 의미로, 특정한 기능이나 수단이 사라졌을 때 다른 방법으로 변통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달 말 중국과학원은 주목할만한 발표를 했습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최첨단 노광기를 국산화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인데요. 미중 무역전쟁으로 반도체 장비 수입이 막힌 중국이 ‘치망순역지’ 전략으로 결국 자체 장비 개발에 성공하며 위기 돌파에 나선 것입니다.

무역전쟁 속에 탄생한 자체 개발 노광기

중국과학원이 개발한 노광기의 미세화 공정 수준은 22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회로를 두 번 그리는 더블패터닝 기법을 사용하면 10㎚까지 미세화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현존하는 노광기 중 가장 성능이 좋은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기)는 7㎚ 공정까지 가능합니다. 중국 과학원 발표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노광기를 자체 개발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같은 발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미국 반도체 장비 및 관련 소프트웨어의 중국 수출이 제한된 가운데 내려진 조치라 눈길을 끕니다. 미국은 10월 말부터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같은 대표적인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때문에 아직 완전히 장비를 구비하지 못한 푸젠진화, 허페이창신 등 D램 제조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노광기 개발이 미국의 장비 수출 제한 조치 등 각종 제재를 자체 장비 개발로 우회하는 것에 성공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그 누구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을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노광기 개발에 참여한 중국 과학원의 후숭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산 반도체 장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는 해외의 각종 제재를 뚫고 반도체 산업을 성공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해외의 장비 수출 금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반도체 제조 설비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노광기 자체 제조에 성공하면서 수출 금지에 대한 우회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노광기 시장 최강자 노린다

▲ ASML의 EUV 노광장비 (출처: ASML)

눈여겨볼 것은 노광기의 원리입니다. 중국이 개발한 노광기는 파장 365㎚의 광원을 사용했습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반도체 노광기의 광원 파장은 193㎚, ASML이 만드는 EUV의 파장은 13.5㎚입니다. 빛을 쪼여 웨이퍼에 회로패턴을 찍어 넣는 노광기의 원리상 파장이 가늘수록 더 미세화된 공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기존 노광기 대비 훨씬 파장이 넓은 광원을 이용해 미세화 공정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중국 과학원은 구체적인 원리는 공개하지 않고 “광 분별력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설명만 내놨습니다. 중국이 제작한 노광기가 실제로 넓은 파장으로 미세 공정에 성공했다면 이는 노광기 산업 자체를 새로 재편할 수 있는 기술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광원의 파장이 짧아지면서 기술 난이도와 노광기 제조원가는 빠르게 올라왔습니다. 최근 중국 SMIC가 구매한 ASML의 EUV는 1억 2000만 달러(약 136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중국 과학원은 넓은 파장으로 노광기를 제조하면서 이 같은 제조 가격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제조원가가 2000만 위안(33억 원)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실제로 양산에 성공하면 ASML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미세공정 노광기 시장이 재편될 수 있습니다. 중국 과학원은 “넓은 파장을 이용한 만큼 더 쉽게 미세화 수준을 진척시킬 수 있다”라며 “조만간 ASML에 맞먹는 수준의 노광기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노광기가 실제 생산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양산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업체들이 ASML에 뒤지지 않는 노광기를 개발했다며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에 판매를 시도했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기계 자체로는 정밀한 노광 작업이 가능하더라도 전체 공정 흐름 속에서 정확도와 속도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과학원의 노광기 개발 발표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단순히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소재와 장비부터 적극적인 개발에 나서면서 전체 반도체 생태계 단계마다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통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강점입니다. 하지만 산업 전반에 투자가 분산되고 있다는 것은 약점입니다. 중국 과학원의 이번 노광기 개발 역시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얼마가 들어갔는지는 알기 힘듭니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지만 여러 분야에 분산되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당분간은 중국산 노광기가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낼지 지켜볼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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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금속 넘어 반도체까지, 정웨이 그룹이 꿈꾸는 환골탈태(換骨奪胎) /beyond-non-ferrous-metals/ /beyond-non-ferrous-metals/#respond Mon, 12 Nov 2018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beyond-non-ferrous-metals/ 다운로드 (31).png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는 뜻으로 치열한 노력을 통해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대부분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기업입니다. 앞서 소개한 칭화유니와 SMIC 등도 여기에 속합니다. 하지만 원래 있던 대기업이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완전히 변신하려는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 SK텔레콤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기도 한 세계 2위 비철금속업체 정웨이 그룹(正威國際集團)이 대표적입니다.

중세계 2위 비철업체의 새로운 꿈,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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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에 본사를 둔 정웨이 그룹은 구리 및 텅스텐 생산 및 판매, 전선 등 케이블 제작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1만 5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6년 연 매출은 3300억위안(약 53조 6500억원)에 이릅니다. 중국 전체 기업 중에서는 40위, 민간 기업만 따지면 5위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구리 등 비철금속을 취급하는 기업으로는 이미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합니다. 왕원인(王文銀) 회장이 1997년 설립해 역사가 20년 남짓한 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장 속도입니다. 기업의 성장에 힘입어 왕 회장은 포브스 집계에서 중국 부호 6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기업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왕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입니다. 그는 “중국 기업이 세계적인 제조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저렴한 인건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연구개발을 통한 부단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왕회장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부터 반도체 사업 진출을 타진했습니다. 중국 전자산업의 구조를 생각할 때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자체 생산이 필요하다고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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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AMER International Group 공식 홈페이지

정웨이그룹은 그룹의 핵심 사업 영역인 구리가 반도체 회로의 원료라는 점에서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반도체 치킨게임 와중에 생산설비가 싸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좋은 생산설비를 10분의 1 가격에 매입하면 나중에 반도체 사업이 여의치 않더라도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되팔아 충분히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반도체 사업을 이해하고 있다면 합리적이라고 하기는 힘든 판단들입니다. 실제로 왕 회장은 2010년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을 오가며 반도체 설비 매입 및 기술 공동 개발을 타진했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습니다. 상업성이 없는 8인치 웨이퍼 생산 설비를 2011년 삼성전자에서 매입한 것이 유일한 성과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웨이그룹은 같은 해 7월 안휘성 츠저우에 반도체 생산공장에 대한 본격 투자에 돌입했습니다. 2020년까지 반도체 설계와 생산, 패키징까지 한곳에서 처리하는 종합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산둥성에 150억 위안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웨이 그룹이 처음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때 “생소한 분야에 투자할 돈으로 주업인 비철금속에서 신규 광산을 사들이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타당했던 지적입니다. 하지만 반도체 진출을 통해 ‘기술보국’을 하겠다던 왕 회장의 도전을 평가절하하기만은 힘듭니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이유로 반도체 산업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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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비지중물(非池中物), 중국 롱시스의 잠재력을 보다 /non-intermediate-things/ /non-intermediate-things/#respond Tue, 16 Oct 2018 15:00:00 +0000 http://localhost:8080/non-intermediate-things/ 메인 수정4.jpg

비지중물(非池中物), 용이 때를 만나면 못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듯 영웅도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큰 뜻을 편다는 뜻입니다. 중국에는 한국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는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있지만 반도체로 저장장치를 비롯한 제품들을 만드는 기업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고객에 속하는 기업들이죠. 그중 롱시스(Longsy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장보롱(江波龍)은 중국 내에서 기술력이 가장 높고 판매량도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저장장치 제조업체입니다. 기업명 자체가 ‘강에 파도를 일으키며 승천하는 용’이라는 뜻입니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롱시스는 반도체 업계의 비지중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마이크론 자회사 렉사 인수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롱시스는 낸드플래시를 이용해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플래시메모리 카드 등을 제조합니다. 1998년 설립돼 원래 넷콤(netcom)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했지만 일부 국가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기업이 존재해 2011년에 포씨(forsee)라는 브랜드를 새로 도입했습니다.

한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의 저장장치 제조 자회사 렉사(Lexar)를 지난해 9월 인수하면서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용 저장장치 및 USB를 주로 만들어온 렉사를 정리하고 관련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마이크론의 발표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롱시스는 오랫동안 저장장치 사업을 하며 해외에 많이 알려져 있는 렉사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하기 위해 업체 자체를 사들였습니다. 실제로 렉사 인수 이후 롱시스는 소비자용 제품에 렉사, 기업용 제품에는 포씨라는 브랜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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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롱시스는 마이크론의 저장장치 제조 자회사 렉사를 인수했다. (출처: Longsys)

아직 롱시스는 세계 저장장치 업계에서 크게 두각을 못 드러내고 있습니다. SSD 시장의 점유율도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회사 자체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3년간 포씨 브랜드를 달고 팔린 저장장치는 1억 5000만 개로 용량을 기준으로는 18억 GB(기가바이트)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큰 저장장치 업체인 만큼 중국 시장 내 영향력은 큽니다. 중국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요 낸드플래시 고객 중 하나입니다. 특히 회사 측은 2015년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죠.

中 내수 수요 등에 업고 세계시장 제패 노린다

최근에는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 롱시스는 지난 1월 CES에서 초소영 SSD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출처: Longsys)

최근에는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난해부터는 SSD에 HMB(Host Memory Buffer)를 탑재해 D램의 도움 없이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는 초소형 SSD를 내놔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가로, 세로 크기가 8㎜, 10㎜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저장장치와 크기 자체는 별 차이 없지만 용량은 사양에 따라 480GB에 이르는 제품입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자체적으로 내장도 해야 하는 VR(가상현실) 기기와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회사 측의 전망입니다.

중국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 정부를 추진하며 저장장치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 내 PC의 40%만 SSD를 사용하고 있어 소비자용 제품의 내수 시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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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시스의 차이화보 회장 (출처: Longsys)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경쟁은 마라톤 경기와 비슷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뛰는 것 이상으로 인내심을 갖고 다른 이들을 쫓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이는 이렇게 인내심이 있으면서 끝까지 함께 뛰는 기업일 것입니다.”

창업자인 차이화보 회장은 이처럼 든든한 중국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언젠가 세계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관련해서도 눈여겨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창장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양산에 돌입하더라도 초기에는 저사양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 진입을 시작했던 LCD(액정표시장치) 제조업체들의 선례에 비춰볼 때 초기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소화하기에는 수준에 못 미치는 물량을 중국 업체들에 떠넘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의 생태계가 튼튼할수록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연착륙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구조의 연장선에서 롱시스의 성장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 반길 수만은 없는 사안입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롱시스는 아직 세계 SSD 제품 시장의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소니 SSD에 납품하는 등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습니다. 속도 못지않게 인내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차이화보 사장의 말처럼 마라톤 같은 낸드플래시 시장 경쟁에서 과연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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